
오랜만에 개인 블로그에 적어뒀던 글이 생각나 찾아 읽었다. 소설가 박완서의 작품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을 따로 발췌한 글이다. 작성일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이 한창이던 2016년 12월 7일. 모두가 혼란스러웠던 그때, 나는 부끄러움이란 감정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싶었던 것 같다.
최근 서울경마공원(렛츠런파크)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휴게공간을 취재하면서도 몇 년 전 블로그에 글을 쓸 당시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이곳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 중 일부는 화장실 안과 계단 밑 등 휴게공간이라고는 도저히 여겨지지 않는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본 이들은 고객이 용변 보는 소리를 들으면서 빵과 귤 등 주전부리를 먹었다.
한국마사회는 이 모든 책임을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에게 떠밀었다. "미화원들이 계단 또는 화장실 근처를 무단 점유해 임시 휴게실로 이용했다"고 했고, 심지어는 "열악함을 과장하기 위해 연출했다"라고까지 표현했다. 경인일보 보도 이후 고용노동부 안양지청이 실시한 현장 점검에서 부적절한 휴게공간에 대한 이전·폐쇄 권고를 받고도 '안하무인'식 태도를 보였다. 자신에게 유리한 '언론플레이'도 빼놓지 않았다.
김낙순 한국마사회 회장이 보도 이후 청소노동자들을 찾아 간담회를 자청하고, 이달 말 노사 간 상생협약을 약속한 것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이 같은 발언을 하고 뒤로는 노조에 비공식 사과를 했단다. '면피성'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화장실 안에서 쉬던 청소노동자, 그 모습을 취재한 기자, 기사를 접한 시민들은 모두 저마다의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러나 그들에겐 부끄러움이 없었다. 소설에서처럼 모처럼 돌아온 내 부끄러움이 나만의 것이어서는 안 될 것 같다.
/배재흥 사회부 기자 jhb@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