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23일 밤부터 어제에 이어 오늘도 필리버스터로 공회전한 뒤 회기를 마친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23일 4+1(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가 합의한 선거법개정안을 기습 상정하자, 자유한국당이 필리버스터에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범여연합은 소수야당의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권한마저 허용하지 않았다. 과반의 힘으로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는 대신 야당의 항의를 경청해 주어야 할 필리버스터에 발언을 신청해 자신들의 선전장으로 활용하는 꼼수를 발휘했다.

4+1은 26일부터 선거법개정 임시국회, 공수처법 임시국회를 순서대로 착착 진행할 것이 확실하다. 한국당은 필리버스터를 행사하겠지만, 4+1의 전략대로라면 필리버스터는 정상적인 찬반토론 장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 국회가 필리버스터의 의미를 새롭게 만들고 있는 현실은 상대에 대한 관용과 존중이 사라진 막장 정치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필리버스터의 의미가 무색해진 것과는 별개로 과연 선거법개정안과 공수처법이 이런 식으로 처리할 법인지 의문이다. 대의민주주의 근간인 국회를 구성하는 선거법 제·개정은 여야 합의로 처리해야 한다는 것은 법으로 규정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불문율이다. 4+1은 민주주의의 금과옥조를 부인했다. 앞으로 과반을 차지한 정당과 정당연합이 자기들 유리한대로 선거법을 고쳐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장래의 후유증을 생각하면 4+1의 당초 합의안인 '심상정안'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건 그저 코미디에 불과하다. 4+1이 한국당의 비례한국당 창당을 비난할 이유를 모르겠다.

공수처법은 어떤가. 현 정부 핵심인사와 기관 비리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을 정치검찰로 비난하는 집권세력의 태도를 보면, 공수처의 독립성은 야당이 동의하는 수준으로 보장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4+1은 공수처장과 수사관 임명권을 대통령이 갖는 '백혜련안'을 단일안으로 합의했다. 공수처장 국회동의권, 기소심의위원회로 공수처의 정치독립과 권한남용을 제한한 '권은희안'은 폐기됐다. 검찰을 압도하는 괴물 같은 공권력을 사지선다도 아닌 이지선다로 탄생시키는 현실이 기막히다.

이 모든 일이 단 며칠 만에 4+1의 정략적 이익에 따라 결정됐고, 야당의 필리버스터마저 조롱하며 일회용 국회에서 처리하기에 이른 것이다. 4+1에 묻는다. 과연 이런 식으로 처리할 법안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