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기 1년전인 2001년에 남겨
사망후 전해받은 막내딸이 공개
통일·가족 상봉 '열망' 고스란히
월북 작가 화봉(華峯) 황영준(黃榮俊, 1919~2002)은 2002년 눈을 감기 전까지 남한에 있는 딸과 아들 등 혈육을 잊지 못한 채 몸부림쳤다. 그의 작품 세계 곳곳에는 이산의 아픔이 오롯이 새겨져 있다.
'펜을 들고 보니 50년 전 한 주일이면 돌아올 것 같아 너희 어린것들 손목 한번 따뜻이 잡아 주지 못하고 너희 어머니에게 살뜰한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떠나온 것이 너무나 가슴 아파 흥분을 누를 길이 없구나'.
황영준은 2002년 4차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운명을 달리했다.
남한의 혈육에게 줄 선물 보따리를 놓고 수양아들 가족과 함께 사진까지 찍었지만 상봉을 목전에 두고 이산의 한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가 눈을 감기 1년 전인 2001년 3월, 황영준은 가족들에게 한 통의 편지를 남겼다. 지난 10일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 개막한 황영준 전시회를 찾은 막내딸 명숙(73)씨는 아버지가 사망한 후 적십자사로부터 받았다는 편지(사진)를 경인일보에 공개했다.
편지에는 가족들을 애타게 그리는 황영준의 마음이 구구절절하게 담겨 있다.
'령전(영전)에 술 한잔 붓지 못하는 이 아들을 애타게 기다렸을 너희 할아버지, 할머니 묘소는 어디에 있는지, 정말 알고 싶은 것이 너무도 많으니 무엇부터 묻고 무엇부터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그리움에 애타게 부르고 또 부르는 내 아들 문웅, 인호야 귀엽고 사랑스러운 내 딸 혜숙, 명숙아 무정한 이 사람을 기다리며 네 남매 키우느라 백발이 되었을 귀중한 로친(노친)이 정말 보고 싶고 그리웠다'.
황영준은 1950년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남한에 4남매와 부인을 남기고 북으로 넘어갔다. 막내딸 황명숙씨는 "아버지는 딱 일주일 있다가 돌아오겠다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며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한 걸 한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했다.
황영준은 통일과 가족 상봉에 대한 열망도 편지에 담았다. '통일이 되어 우리 서로 만나는 그날까지 나는 북에서 너희는 남에서 모두 힘있게 노력해 나가자. 이 아버지는 너희 모두가 통일을 위한 길에서 자기의 모든 것을 다 하리라 기대하고 또 기대한다'.
편지는 '너희들을 한시도 잊은적 없는 아버지 황영준으로부터'로 끝맺는다.
/김명호기자 boq79@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