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 복원사업이 딜레마에 빠졌다. 수원화성 복원을 위해 정조대왕이 만든 220년 전통의 팔달문시장 일부를 철거하자 여론이 반발하면서다. 수원시는 수원화성 문화재보호구역 정비계획에 따라 '팔달문 성곽 잇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시는 오는 2030년까지 총 예산 2천500억여원을 들여 남수문~팔달문~팔달산 사이 끊긴 구간 304m를 연결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성곽 304m를 잇는 사업에 시장 점포 100여곳이 쫓겨날 위기다. 시는 팔달로 남수문 옆 일부 건물을 이미 철거했고, 보상 대상인 사유지 9천67㎡ 가운데 20% 가량 보상을 완료한 상태다.

정조대왕은 '양반상인론'을 책임질 가문으로 전라도 해남에서 무역업을 하던 고산 윤선도의 후손들을 수원으로 불러들였다. 이어 전국의 눈 밝은 상인들도 정조의 숨은 뜻을 간파하고 하나 둘 수원으로 모여들어 상권을 형성했다. 팔달문시장은 수원을 상업과 경제의 중심지이자 백성이 주인인 공간으로 만들고자 한 정조의 애민정신이 서려있는 곳이다. 팔달문시장은 국비·도비·시비·상생자금 등 6천억원 이상의 예산이 투입된 경기도내 대표적 전통시장으로, 지동·영동·로데오 패션1번가·미나리광·못골·공구 등 9개 시장연합회와 통닭거리·가구거리를 아우른다.

버드나무가 많은 팔달문시장에 터를 잡은 이들은 '유상(柳商)'이라 불리며 일하는 가치를 이어왔다. 상인들은 삶의 터전을 잃는다는 불만 보다 왕이 만든 전통시장이라는 상징성 훼손에 더 크게 분노하고 있다. 대형마트의 범람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수원의 전통 중심상권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명맥을 이어온 상인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집단행동을 예고했다. 상인들은 주변 지역 재개발로 아파트가 들어서면 2~3년 뒤 상권이 다시 활성화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와중에 철거 날벼락을 맞았다. 수원시는 "수원화성 문화재보호구역 내 정비를 위해 일부를 철거하는 것"이라고 해명하지만, 상인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기에는 너무 뻔한 답이다. 상인들이 왜 분노하는지 그들의 호소를 들어야 한다.

수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도시이자 대동(大同)의 도시다. 위기는 기회다. 수원화성과 전통시장이 공생할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해 세계적 관광지로 도약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백성의 풍요로운 삶을 꿈꿨던 애민군주 정조대왕의 정신을 되새겨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