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자가격리 중인 국민의 권리와 관련해 정부의 입장이 속속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정부는 4·15 총선 투표일까지 최대 10만명에 이를 자가격리 국민들의 투표권 보장 방안에 대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반면에 정부는 어제 자가격리 국민 일부의 격리지 이탈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손목밴드를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말이 손목밴드지, 착용자의 위치 이동을 파악할 수 있는 전자팔찌다.

정부가 자가격리 국민의 전자팔찌 착용을 고민 중인 이유는 일부 자가격리자의 무책임한 일탈행위에 대한 여론의 악화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군포의 한 부부, 베트남 출신 유학생 등이 자가격리 앱이 탑재된 스마트폰을 집에 두고 무단외출을 감행해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건 사실이다. 특히 해외입국 코로나19 확진자의 대부분이 거주하는 수도권에 병원 감염, 대형유흥업소 감염 등 집단감염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자가격리자의 격리지 이탈은 코로나 방역 전선을 허물 수 있는 결정적 구멍이 될 수 있는 점도 부인하기 힘들다.

하지만 자가격리 국민의 폭증은 이미 예견됐었다. 6일 오후 6시 현재 전국의 자가격리 국민은 총 4만6천566명이고, 이중 해외입국자는 3만6천424명이다. 자동적으로 자가격리되는 해외입국자를 감안하면 자가격리 국민이 8만~9만명에 이른다는 것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의 추정치다. 이 정도 인원이면 극소수의 일탈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조건이다. 이를 막기 위해 수 만명의 공무원을 전담관리 요원으로 지정해 놓은 것 아닌가.

자가격리 국민들도 이번 코로나 사태의 피해자이고 당연히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 이들은 전체 국민의 안전과 정부의 방역에 협조하기 위해 사회로부터 격리당하는 희생을 감수하고 있다. 극소수의 격리지침 위반사례를 빌미로 자가격리 국민 전체의 희생을 폄하하고,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손목밴드든 전자팔찌든 자유를 속박하고, 낙인효과로 인한 반인권적 후유증을 피할 수 없다.

집권 이후 고도의 인권 감수성을 보여 준 정부와 여당이 이 문제와 관련해 치열한 내부토론 한번 없이,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을 통해 "고민 중"이라는 식으로 전자팔찌 도입 가능성을 흘린 것도 사안의 중대성에 비추어 너무 가볍다. 고민 중이라면 재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