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로폰 투약·소지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마약사범에 대해 항소심이 경찰관의 '미란다 원칙' 미고지를 이유로 무죄 판결했다.

분양대행업자 A(55)씨는 지난해 4월16일 오후 2시40분께 필로폰 약 3.14g을 일회용 비닐봉투에 담아 자신의 상의 안주머니에 보관한 채 B씨와 함께 안양시 동안구 관악대로의 한 모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려다 마약 수사 경찰관 5명을 맞닥뜨렸다.

둘 중 B씨에 대한 체포영장은 발부된 상황이었다. 경찰은 이 둘을 엘리베이터 안으로 밀어 넣은 뒤 신분을 밝히고 B씨를 우선 체포하며 A씨를 B씨의 또 다른 공범 C씨로 의심하고 추궁했으나 신원이 다른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A씨가 식은땀을 흘리고 흥분한 모습을 보이며 필로폰을 투약한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경찰은 수사에 협조해달라고 요구했지만, A씨는 "당신들 누구냐. 왜 나를 잡으려고 하느냐"며 거칠게 항의했다. 갑작스러운 저항에 경찰은 A씨를 다시 모텔방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려 했으나 A씨는 더욱 더 강하게 저항했다.

결국 경찰은 몸싸움 끝에 A씨에게 긴급체포 형식으로 수갑을 채우면서 체포 이유와 진술거부권 등 미란다 원칙을 고지했다. 이후 피고인이 태도를 바꿔 필로폰 소지 사실을 밝히며 수사에 협조했다.

수사기관은 A씨의 동의를 받아 소변과 모발을 채취한 뒤 A씨가 안양시 또는 부산시 일대에서 필로폰을 투약하고 체포 당시 필로폰을 소지한 혐의(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로 재판에 넘겼다.

이 사건을 맡은 원심 재판부는 "피고인 체포와 얻은 증거는 모두 적법하게 얻은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필로폰 투약의 점과 소지의 점도 유죄로 인정된다"며 징역 1년6월 실형을 선고하고 10만원 추징을 명령했다.

원심 재판부는 A씨는 1987년부터 2017년까지 30년간 지속적으로 동종범행을 반복해 총 13회에 걸쳐 징역형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었고, 징역형 집행을 마치고 8개월이 지나지 않은 누범 기간에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점을 양형 이유로 들었다.

이 판결에 불복한 A씨는 "불심검문의 한계를 이탈한 불법체포에 뒤이어 이뤄진 위법한 체포에다 이에 수반해 이뤄진 압수 또한 위법하며 파생 증거도 위법수집증거"라며 항소했다. 검찰은 항소하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수원지법 형사항소3부(부장판사·김수일)는 "피의자를 긴급체포할 경우 반드시 범죄사실의 요지, 구속의 이유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음을 말하고 변명할 기회를 줘야 한다"며 "이 고지는 체포를 위한 실력행사에 들어가기 이전에 미리 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전제했다.

이어 "피고인에게 도주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긴급체포 절차를 게시한 것이라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바로 범죄사실 등을 고지하고 피고인을 체포했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형사소송법은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고 규정한 바 증거능력이 없는 증거들을 제외한 나머지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이 필로폰을 투약·소지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무죄 선고 이유를 밝혔다. 

/손성배기자 so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