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매립지 환경피해지역의 주민 대표들로 구성된 '수도권매립지주민지원협의체'(이하 협의체)의 깜깜이 예산운영에는 브레이크가 없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협의체 구성 후 20년 만에 처음으로 실시된 협의체 운영비 감사가 서류 한 장 들춰보지 못한 채 끝나버린 것이다. 협의체에 매년 5억원 이상을 지급하는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이하 SL공사)는 지난달 협의체 운영예산을 포함한 대외홍보처 종합감사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2000년 이후 지금까지 130여억원이 투입됐음에도 불구, 베일에 가려있던 협의체의 예산운영 실태가 밝혀질 것으로 예상됐었다. 특히 올해 초 협의체가 관할지역 경찰에 고급 골프의류 등 수백만원대의 물품을 건네 물의를 일으킨 것을 계기로 협의체 예산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한 터라 이번 감사는 수도권매립지 안팎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감사에 착수한 SL공사는 협의체 측에서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손을 놓고 말았다. '이번 감사는 협의체 운영비에 특정한 게 아니고 대외홍보처 업무 전반에 대한 감사였기 때문에 이대로 종료하기로 했다'는 게 SL공사측의 설명이다. 물론 협의체가 자료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은 것은 맞다. 협의체는 관련 자료가 담긴 컴퓨터를 교체, 자료 인멸 의혹까지 샀다.

SL공사는 이번 일로 협의체에 철저히 놀아났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애초 운영비 집행 실태를 점검해 줄 것을 요구한 주체가 바로 협의체이기 때문이다. 결국 협의체는 경찰관에 대한 금품 제공 사실이 알려진 후 비난 여론이 들끓자 마치 자정노력을 하는 듯한 액션을 취하다 정작 자료 제출은 거부하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였다. 이에 SL공사는 공기업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무기력하게 대응하며 무능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감사 의지가 있었는지조차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엄밀히 말해 SL공사가 협의체에 지원하는 운영비는 수도권 시민들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협의체의 운영 예산은 수도권매립지 폐기물 반입수수료로 조성되는 수도권매립지 주민지원기금 총액의 5% 범위에서 편성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종량제쓰레기봉투값이 주 재원인 셈이다. 혈세나 다름없는 돈을 주면서 그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관리조차 못하는 SL공사에 대해 대수술이 시급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