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통보를 받자 연인의 자동차에 위치추적 장치를 부착하고 동선을 파악해 살해한 30대가 징역 22년을 선고받았다.

용인시 기흥구에 사는 바텐더 A(30)씨는 2017년 7월부터 B(27)씨와 교제하며 동거도 했다. A씨는 그의 폭력성과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을 견디다 못한 B씨에게 이별 통보를 받았다.

계속 만나달라고 요구했지만 거절 당하자 지난해 8월2일 B씨의 승용차에 위치추적기를 몰래 설치하고 애플리케이션 '패미'를 통해 동선을 감시했다.

나흘 뒤인 6일 오후 10시42분께 사건이 발생했다. A씨는 집에서 직접 테이프를 감아 만든 칼집에 흉기를 넣고 허리춤에 숨긴 뒤 위치추적 앱으로 피해자 차량이 주거지로 이동하는 것을 보고 따라갔다.

7분 뒤 A씨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B씨가 공동현관문 안으로 들어가자 곧바로 따라 들어갔다. A씨는 자신을 보고 놀란 B씨와 약 1분간 마주보며 서 있다가 B씨가 휴대전화를 사용하자 흉기를 꺼내 복부를 1회 찌르고 쓰러진 B씨에게 재차 흉기를 휘둘렀다.

B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복부자상에 의한 과다출혈 등으로 숨졌다.

수사기관은 살인 등 혐의로 A씨를 지난해 8월29일 구속기소했다.

법정에서 A씨와 변호인은 "피고인이 졸피뎀 성분이 들어있는 수면유도제와 소주 1병을 마셔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 심신장애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 재판을 맡은 수원지법 형사12부(부장판사·박정제)는 피고인의 심신미약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징역 22년과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검찰이 청구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도 기한을 10년으로 정해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오히려 치밀하게 사전 준비를 한 뒤 살인의 확정적 고의를 가지고 피해자를 살해했다"며 "피해자 귀가시간에 맞춰 오토바이를 타고 약 1.7㎞ 떨어진 범행 장소로 이동했던 점, 범행에 사용한 도구를 손수 제작한 칼집에 넣어 숨긴 채 범행 장소로 가지고 간 점 등에 비춰 살인의 확정적 고의를 가지고 피해자를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이어 "피고인은 이전에도 헤어진 여자친구들을 상대로 계속 만나달라며 칼로 위협하고 강간하거나 협박하는 범죄를 저질러 두차례나 실형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다"며 "다만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는 점, 가족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영아원과 보육원에서 자란 탓에 성숙한 자아를 형성하지 못한 점 등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A씨는 살인 혐의 외에도 피해자의 신체를 촬영한 혐의(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카메라등이용촬영), 도로교통법 위반(무면허운전) 등을 받았다.

피해자 신체 촬영 혐의는 얼굴이 나오지 않도록 찍는 조건 하에 명시적인 동의를 받고 촬영한 것이라는 A씨의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해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다(2008재도11)는 대법원 판례를 전제로 "위 공소사실 각 영상이 피해자 의사에 반해 촬영됐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무죄 이유를 설명했다.

/손성배기자 so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