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경남 창녕에서 계부와 친모의 폭행을 피해 도망쳐 나온 9살 여아가 겪은 실상은 충격적이다. 그는 집 안에서 막대기로 맞고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고 증언했다. 발견 당시 눈이 멍들고 손가락은 심하게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탈출해 지긋지긋한 지옥에서 벗어났다. 천안에서는 엄마에 의해 강제로 작은 여행용 가방에 갇힌 9살짜리 남자아이가 목숨을 잃었다. 지난 1월 여주의 한 아파트에서는 30대가 의붓아들을 찬물이 담긴 어린이용 욕조에 1시간 가량 앉아있도록 해 숨지게 했다. 부모가 아이를 학대하다 살해하고 야산에 유기한 '평택 원영이 사건'도 있었다.
아동학대는 새로울 게 없는 사회 현상이 됐다. 최근에는 부모에 의한 잔혹한 학대 행위가 늘면서 공분을 사고 있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정치권은 아동복지법, 아동학대관련법을 제·개정해 범죄를 줄이겠다고 공언한다. 인력과 예산을 늘려 범죄를 줄이고 불안감을 해소하겠다는 지자체 발표가 뒤따른다. 하지만 학대 사건을 마주하는 현장의 모습은 달라진 게 없다는 반응이다. 경찰청이 집계한 전국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2017년 1만2천619건, 2018년 1만2천853건, 지난해 1만4천484건이다. 경기 남부지역에선 올해 5개월 동안 1천608건이 접수됐다. 정치권과 지자체가 아동학대를 근절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는데도 오히려 늘고 있는 것이다.
시행을 앞둔 아동학대범죄 법률 개정안은 '공공성 강화'가 골자다.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되면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사들 대신 지자체 전담 공무원이 현장에 출동해 조사하는 권한을 갖도록 했다. 문제는 예산과 인력 확충이다. 성남 안산 시흥 군포 의왕 화성 여주 등 도내 7개 지자체는 '아동학대 조사 공공화 선도지역'이나 추가 배치한 공무원이 1~2명 수준이다. 복지부와 행정안전부 등 중앙부처의 승인 범위가 제한된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개정안이 공공성 강화라는 구색만 갖췄을 뿐 예산과 인력을 확보하기 힘든 게 현실이라고 지적한다.
아동학대는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불량 범죄행위다. 특히 자녀들에 대한 가정 폭력의 증가는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방증일 수 있다. 은밀하고 잔혹하게 이뤄지는 학대 행위를 조기에 발견하기 위한 법·제도적 시스템 보완이 시급하다. 양형기준을 강화하는 등 처벌 수위도 높여야 한다. 정부는 지자체들이 관련 예산과 인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방안을 마련하기 바란다.
[사설]아동학대 막을 법·제도적 시스템 강화하자
입력 2020-06-15 20:36
수정 2020-06-15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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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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