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누른 성욕 풀려던 이춘재, 성폭행으로 범행 시작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재수사결과 발표

2일 오전 배용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장이 수원시 장안구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서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최종 수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과거 경찰의 무리한 수사에 대해 피해자 및 유가족 등에게 머리 숙여 사죄하고 있다. /김도우기자 [e-mail]

내성적 성격 군대 거치면서 변화
저항하는 여성 제압과정 첫 살인
죄책감 등 못느끼면서 잔혹해져

"희생된 피해자·유족 깊은 위로"
배용주 청장, 수사 지난잘못 사과

이춘재는 자신의 범행 동기에 대해 언급을 피했지만, 경찰은 프로파일러 면담결과를 토대로 '억눌렀던 성욕 해소'로 분석했다.

성욕 해소를 위해 범행을 시작했다가 점차 잔혹하고 가학적 범죄를 일삼는 사이코패스 범죄자로 변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2일 브리핑에서 "처음부터 살인을 목적으로 한 게 아니라 자신의 성욕 해소를 위해 성범죄를 저지르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완강히 저항하자 살인을 저질렀고 이후 연쇄살인을 일삼는 범죄자로 변했다"고 말했다.

경찰이 파악한 이춘재의 첫 범행도 살인이 아닌 성폭행이다. 전역(1986년 1월 23일)한 뒤 불과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1986년 2월 18일 첫 성폭행을 저지른 것. 피해자가 모두 여성이라는 점과 점차 사체를 훼손하고, 옷으로 손목을 묶는 것과 같은 범행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이다.

경찰이 분석한 이춘재는 내성적인 성격이다.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성장한 이춘재는 자신의 삶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 동생이 물에 빠져 숨진 뒤에도 충동을 억누른 채 성장했다.

2일 오전 배용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장이 수원시 장안구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서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김도우기자 [e-mail]

그런 그가 달라진 건 군대시절이라고 경찰은 분석했다. 기갑부대 소속으로 탱크를 운전하면서 억눌렀던 충동이 해방하는 희열을 느꼈다는 것이다. 경찰은 "탱크를 운전하면서 후임들을 이끌 때를 얘기하던 이춘재는 다른 얘기를 할 때와 달리 감정이 매우 상기한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이춘재는 1986년 2월 성폭행 범죄 이후 9월 15일 첫 살인사건을 저질렀다. 성폭행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반항하는 상대를 제압하다 살인을 시작했고, 죄책감과 같은 감정변화가 없자 이후 점점 잔혹함을 더하며 연쇄살인을 이어갔다는 게 경찰의 분석이다.

52차례에 걸친 대면조사에서도 이춘재는 범행 원인을 피해자에 전가하고, 자신의 건강만 걱정하는 등 이중적이고 자기중심적 모습을 보였다. 피해자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서 전혀 공감하지 못한 것. 게다가 자신의 범행과 존재감을 과시하기도 했다.

경찰은 "사이코패스 성향"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사이코패스 진단 검사에서도 65~85%가 나오는 등 사이코패스 성향이 뚜렷하게 나타난 것으로 조사됐다.

아울러 당시 검찰·경찰 9명도 입건해 검찰에 송치했다. 다만 공소시효가 만료돼 '공소권 없음' 의견으로 송치된다.

2일 오전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서 배용주 청장이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피해자와 유가족 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김도우기자 [e-mail]

8차 사건 당시 검사와 경찰 수사과장 등 8명은 범인으로 지목한 윤모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75시간 동안 감금하면서 허위 자백을 받아낸 혐의를 받고 있다. 또 화성 초등학생 살인사건을 맡은 형사계장 등 2명도 사체은닉 및 증거인멸 혐의가 적용됐다.

이날 브리핑에서 경찰은 지난 잘못에 대해 사과했다.

배용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장은 "이춘재의 잔혹한 범행으로 희생된 피해자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씨와 그의 가족, 또 당시 경찰의 무리한 수사로 피해를 입은 분께도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사과했다.

이어 "이번 수사를 자료로 남겨 책임 있는 수사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한 역사적 교훈으로 삼겠다"고 약속했다.

/김동필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