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국가대표 출신으로 감독·트레이너 등의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고(故) 최숙현 선수의 동료들이 입을 열었다. 고 최숙현 선수와 함께 경주시청에서 뛴 동료들은 6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은 감독과 특정 선수만의 왕국이었으며, 폐쇄적이고 은밀하게 상습적인 폭력과 폭언이 당연시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이 표현한 '왕국'에서 벌어진 일들은 귀를 의심케 할 정도이다. 콜라를 한 잔 먹어서 체중이 불었다는 이유로 빵을 20만원어치 사와 새벽까지 먹고 토하게 만들고 또 먹고 토하도록 감독이 시켰다는데 이처럼 가학적인 행위가 선수 숙소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었다니 기가 막힐 뿐이다. 동료 선수들은 이 밖에도 갖가지 인권침해 사례들을 폭로하면서 팀의 최고참인 주장 선수도 가해자로 지목했다. 선수들에게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숙소는 훈련으로 인한 피로를 풀고, 서로를 격려하는 공간이 아니라 구타와 얼차려가 난무하던 옛날 군대 내무반, 심하게는 고문실이나 다름없었을 것 같다. "감독과 주장선수의 억압과 폭력이 무서웠지만, 쉬쉬하는 분위기에 그것이 운동선수들의 세상이고 사회인 줄 알았다"는 선수들의 말은 일그러진 체육계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
물론 모든 실업팀이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같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잊을 만 하면 국민의 공분을 불러오는 각종 비리가 체육계에서 터져 나오는 것을 볼 때, 체육문화의 개선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이번 사건도 쇼트트랙 조재범 코치의 심석희 선수 성폭행 사건으로 체육계가 발칵 뒤집어진 지 불과 1년 만에 터졌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에 들어간지도 1년 만이다. 고 최숙현 선수를 비롯,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시청 실업팀에 발을 디딘 20대 초반의 선수들에게는 '지위 또는 관계 우위를 이용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 등을 금지한다'는 개념이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들렸을 것이다.
체육계의 반인권적 문화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 가해자들을 엄벌에 처하고 체육계의 반인륜적 생태계를 뜯어 고쳐야 한다. 학교 체육에서부터, 성적만능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운동부 대신 스포츠클럽으로의 전환을 유도, 인권침해나 폭력문화가 깃들 여지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재발방지 약속 보다 실질적인 개선책을 마련하는 게 급선무다.
[사설]그들만의 왕국에서 학대당한 선수들
입력 2020-07-06 20:46
수정 2020-07-06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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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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