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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호 인천본사 사회부 차장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겨울날 아침, 귀가한 오빠는 거실에서 자고 있던 여동생을 발견했다. 그런데 동생의 얼굴에 폭행당한 흔적으로 보이는 멍든 자국과 입술이 터진 자국이 있었다. 동생은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말도 잘 못하고, 온전히 정신을 차리지도 못했다. 오빠는 '무슨 일을 당했구나' 직감했다.

지난 8일 오후 인천지법 317호 법정에서 열린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3차 공판을 방청했다. 가해자들이 범행을 저지르고도 길거리에서 피해자를 마주치게 한 관련 당국의 안이한 대처 등으로 국민적 공분을 사게 해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4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사건이다.

이날 공판에서는 증인신문이 있었다. 앞의 내용은 이날 증인으로 나선 피해자의 친오빠 A(20)씨가 법정에서 울먹이며 증언한 범행 직후 아침 상황이다. 동생이 성폭행당한 사실을 알았다. 세상의 어느 오빠가 가만히 앉아만 있을 수 있을까.

이때부터 A씨는 동생이 누구와 술을 마셨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추적해 가해자를 찾고 경찰에도 신고했다. A씨는 동생의 산부인과 진단서를 받고 나서 피해를 확신했다고 한다.

A씨는 사건 이후 인천의 한 원룸에서 가해자인 B(14)군과 C(15)군을 만나 범행에 관한 얘기를 듣고 녹취했다. 당시 A씨는 지인인 남성 2명과 함께 원룸을 찾았다. 법정에서 튼 녹취에는 가해자들이 범행 등을 털어놓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피해자 오빠 A씨는 이렇게 증거를 모았는데도,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들은 부실 수사 의혹으로 현재 감찰받고 있다.

범행을 부인하는 가해자 1명의 변호인은 이날 법정에서 A씨가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진술을 받았다면서 녹취 내용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앞서 가해자 측은 A씨와 지인들을 감금죄 등으로 고소하기도 했다. A씨가 동생의 성폭행 피해를 입증하기 위해 모은 증거가 불법적인지 아닌지가 이번 사건의 또 다른 쟁점이다.

/박경호 인천본사 사회부 차장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