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 걱정하다못해 '성적반영' 얘기까지
스티브잡스도 중독우려 자녀 아이패드 금지
첨단기술 '가치있는 삶에 사용' 결정지어야
일행 중 한 명이 "게임을 학교 과제로 내고 성적에 반영하면…"이라는 말을 꺼냈다. 골자는 이렇다. 아이들에게 매일 4~5시간씩 게임을 하게 하고 일정 수준의 단계 점수를 중간·기말 성적에 반영하자는 것이다. 하기 싫어도 억지로 해야 하고 학교 과제나 시험이라고 하면 아무리 재밌는 게임이라도 흥미를 잃을 수밖에 없다는 나름의 논리였다. 일행들은 "그럴듯한데"라는 반응이었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몇몇 일행의 눈빛에서 정말 학교에서 게임을 숙제로 내주었으면 하는 간절함마저 느껴졌다.
자녀들이 모바일기기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선 '애플'과 '트위터'의 창립자도 속사정은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스티브 잡스가 10여 년 전 뉴욕타임스 기자와 인터뷰에서 "(자신의) 아이들은 아이패드를 쓰지 않는다"고 한 말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트위터 창립자 중 한 명인 에번 윌리엄스(Evan Williams)도 어린 두 아들에게 책은 수백 권을 사주었지만 아이패드는 사 주지 않았다고 한다. 잡스와 윌리엄스는 한 번 경험하면 헤어나올 수 없는 효율적이고 중독성이 강한 매력적인 앱들이 청소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미 알고 있었다.
뉴욕대학교 스턴경영대학원 마케팅 부교수이자 심리학과 겸임교수인 애덤 알터(Adam Alter)는 저서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에서 스티브 잡스의 판단을 이렇게 분석했다. "중독은 대개 그런 물질보다는 환경과 상황에서 비롯된다. 스티브 잡스는 이를 간파했다. 그가 자기 자녀들에게 아이패드를 금지한 것은 중독 물질과는 다른 온갖 장점을 가진 그 기기의 매력에 아이들이 취약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중략…) 중독자와 중독자가 아닌 사람을 가르는 명확한 선은 없다. 우리 모두 특정 기기를 사용하거나 앱을 즐기다가 중독될 수 있다."
지나친 모바일기기 사용이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다. 전 세계 수십억명의 사람들이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에 실시간으로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고 게시물을 올리며 '좋아요'를 갈망하고 있다. 모바일기기를 통해 알고 싶거나 알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일상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바꿔 말하면 '누군가를 관찰하고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나를 관찰하고 있다'는 얘기다. 내가 누구와 함께 어디에 가서 무엇을 먹고 어떻게 잠자리에 들었는지, 결제는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 취미 생활은 무엇인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투표는 누구에게 했는지까지 직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대중의 관심사가 무엇인지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만 찾아보면 된다.
관종, 인싸, 셀럽에 관련한 이야기들이 수시로 나돌고 있는 모바일기기가 잠시라도 손에 없으면 불안해하거나 초조해 하고 심지어 폭력적인 증상을 보인다. 알코올이나 마약으로만 중독되는 게 아니다. 모바일기기 자체가 마약을 투약하는 주사기가 될 수 있다. '모바일 결핍 공포증(nomophobia : no mobile-phone phobia)'은 단순한 심리 상태로 볼 게 아니라 정신질환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우리는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모바일 중독의 시대를 살고 있다. 삶을 가치 있도록 사용할 수 있는 첨단기기를 정신을 좀 먹는 데 사용한다면 수술용 마취제를 환각용 마약으로 사용하는 것과 같다.기술은 발전하는데 그 기술로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하지 못하는 것은 수술용 마취제로 사용할 것인지 환각용 마약으로 사용할 것인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