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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전 화재가 발생한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SLC물류센터 앞에서 화마를 피한 직원과 지인들이 화재현장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갑자기 눈앞 깜깜해져 대피 못해
일부 벽 더듬고 겨우 탈출하기도
비상구와 거리 관계없이 '희생'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보였어요. 나가고 싶어도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 나갈 수가 없었어요. 그냥 경적만 울렸어요."

21일 오전 8시29분께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SLC물류센터 화재현장에서 구조된 A씨는 사고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A씨는 이날 오전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하 4층에서 자신의 차량에 탄 채 일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큰 굉음이 들렸고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발견했다.

A씨는 "굉음이 계속 들려서 경보가 울렸는지 기억이 안 난다"며 "사고가 나고 다른 직원에게 내가 여기 있으니 구해달라고 전화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곧장 창문을 끝까지 올리고 비상등을 켠 상태에서 계속 경적을 울렸다. 수십 분이 지나 구급대원의 손전등 불빛이 비쳤고 A씨는 구조됐다.

또 다른 작업자 B씨는 어둠을 뚫고 자력으로 탈출했다. B씨는 사망자가 다수 발생한 지하 4층에서 작업 중이었다. 그는 "갑자기 폭발음이 나더니 연기가 사방으로 번졌다"며 "너무 어두워서 벽을 더듬으며 겨우 탈출했다"고 말했다.

이날 양지SLC물류센터에 난 불로 5명이 사망했고, 8명이 다쳤다.

 

용인물류센터 화재
21일 오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SLC물류센터에서 불이 나 소방대원들이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 불로 근로자 5명이 숨지는 등 1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소방당국은 목격자 진술을 토대로 지하 4층을 발원지로 보고 있다. 지하 4층엔 냉장·냉동창고가 있고, 냉동 탑차도 내려갈 수 있도록 설계됐다. 사고 당시에도 냉동제품을 상·하차하는 작업이 이뤄졌던 것으로 파악됐다.
발화지점에 대해 소방 관계자는 "차량에서 시작했는지, 아니면 기계에서 시작했는지 감식해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화재 현장엔 비상구가 총 4개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소방 관계자는 "사망자들은 비상구와 먼 지점이나 가까운 지점이나 할 것 없이 산발적으로 있었다"며 "자세한 사항은 감식 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진영 행정안전부장관과 이재명 경기도지사, 백군기 용인시장, 정찬민 국회의원도 화재현장을 찾았다. 이 지사는 SNS를 통해 "원인은 신속하게 파악하고, 책임은 끝까지 따지겠다"고 약속했다.

양지SLC물류센터는 지하 5층, 지상 4층, 연면적 11만5천여㎡ 규모로, 지난 2018년 12월 준공됐다. 2017년 10월 24일 공사 중 흙막이가 무너져 10명의 사상자를 낸 바 있다.

당시 국토교통부 소속 건설사고조사위원회는 시공사가 안전관리 계획서를 준수하지 않았고, 감리자도 흙막이 해체 안전성을 확인하지 않는 등 현장 관리를 소홀히 했다고 지적했다.

/박승용·김동필기자 phiil@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