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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영 경제부기자
이병희(1926~1997) 전 국회의원이 작고했을 때 그 묘지 앞에서 목 놓아 통곡했던 경찰관이 승진했다는 풍문이 있다. 그 모습을 목격한 높은 분이 애향심이 있는 공무원으로 봐 그렇게 조치했다는 얘기다. 어디까지나 풍문이지만 이 에피소드는 고 이병희 의원이 수원 지역에 어떤 의미의 인물이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좋은 사례다.

어떤 도시는 어떤 인물을 얘기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수원과 이병희가 그렇다. 이병희는 수원에서 7선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수원시민들은 박정희 군사쿠데타의 군벌 출신인 그를 1963년 6대 국회에 입성하도록 선택해줬다. 같은 군벌인 유승원이 인천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이 둘은 박 전 대통령에게 각각 인천과 수원으로 경기도청을 이전해달라고 건의한다. 결의를 보여준다고 삭발한 이병희는 박 전 대통령과 담판해 경기도청 수원 이전을 성사시켰다.

삼성 수원공장 설립, 성균관대학교 수원 유치, 화성성곽 복원 등 지금의 수원을 있게 한 굵직한 일에는 그의 이름이 아로새겨져 있다. 그는 경인일보 본사 수원 이전의 숨은 세력이기도 하다. 60년대 후반 사장이 옥살이를 하며 경영진이 공백이던 시기에 신문사에 돈을 댈 발행인을 섭외하고 본사를 이전시킨 뒷배가 바로 그였다. 또 선경직물이 군부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운 막후이기도 했다.

6·7·8·9·10·13·15대 국회의원. 중간중간 빈 숫자는 그가 걸어온 길이 순탄하지 않았으리란 걸 짐작케 한다. 군벌이었으나 신군부에선 부정축재자로 몰렸고 주먹계 거물 김두한·남경필 전 지사의 아버지인 남평우와 겨뤄야 했으며 자민련 소속으로 어렵게 선거를 치르기도 했다.

그런 이병희 평전이 곧 출간된다. 저자는 경인일보 4·5대 편집국장이었던 이창식 국장이다. 한 시대를 풍미하며 수원이란 도시를 쥐락펴락 한 장본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공과 그늘은 있을 것이나 그것 역시 이병희를 알아야만 논할 수 있을 터. 일독을 권한다.

/신지영 경제부기자 sj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