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송도고등학교 설립자와 관련해 주목할만한 기록이 새로 발굴됐다. 이 학교의 설립자가 그간 알려진 친일파가 아닌 미국인 선교사임을 밝힌 1930년대 개성의 지역신문 기사다. 송도고는 1906년 10월3일 개성 송악산 기슭 산지현에서 개원한 한영서원이 뿌리다. 이후 한영서원은 1917년 사립송도고등보통학교로 교명이 바뀌었고,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 인천 송학동으로 피난 개교했다. 1983년에는 옥련동 신축교사로 이전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개천절이었던 지난 3일은 이 학교가 개교 114주년을 맞은 날이다.

이처럼 한국 근현대 교육사의 이례적 발자취를 간직한데다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명문학교임에도 불구, 이 학교는 그간 민족사적 가치를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그동안 이 학교의 설립자가 독립운동을 하다 일제 말기 변절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윤치호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송도고의 학교법인인 '송도학원 100년사'에도 한영서원은 윤치호에 의해 설립된 것으로 나온다.

이 같은 통설을 뒤집은 주역은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독립운동사연구소다. 경인일보 보도에 따르면 독립운동사연구소는 송도고 출신 독립운동가에 대한 서훈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자료를 수집하던 중 1933년 12월16일 발간된 개성의 지역신문 '고려시보'에서 송도고의 설립자와 관련된 기사를 찾아냈다. "광무 10년 봄 미국인 목사 왓슨씨가 처음으로 한영서원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송악산 아래 산지현에 있는 선교사의 부속주택을 빌어서 개교를 하였다가 다시 융희 2년 4월11일에 학부로부터 비로소 설립인가를 받아가지고…"라는 내용이 담긴 특집기사다. 87년 전의 빛바랜 신문까지 샅샅이 뒤져 소중한 기록을 찾아낸 독립운동사연구소의 역사적 소명의식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송도고 동문들로서는 더없이 의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친일파가 설립한 학교라는 누명을 쓴 세월을 한꺼번에 벗는 느낌'이라는 동창회장의 말이 이를 방증한다. 일종의 물타기 식으로 교육사업 등의 치적을 내세워 친일행적을 희석시키려는 시도를 우리는 종종 보아왔다. 송도고의 설립자가 잘못 알려진 것도 여기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의심이 든다. 이번 송도고 설립자 재조명 자료가 우리나라 근현대 교육사의 어긋난 퍼즐을 맞추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