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1901000645100033871
한껏 올려 묶은 머리에 활동하기 편한 운동복을 입은 9살 소녀가 엄마 손을 꼭 붙들고 법원에 왔다.

피겨 스케이팅 훈련 도중에 점프를 잘 못한다고 코치의 장갑에 이마를 맞았던 그 소녀가 옛 선생님의 첫 재판을 보러 법정에 나왔다. 이날 코치가 출석하지 않아 제자와 선생님의 조우는 이뤄지지 않았다. 훈련 당시 학대의 아픔 탓에 잠시 운동을 쉬었지만, 꿈을 잃진 않았다. 소녀는 이제 매일 빙상장에 선다.

이 코치는 지난 16일 수년에 걸쳐 제자들에게 가한 학대·폭언 관련 공소사실이 모두 인정돼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지난해 8월 학대 피해자 학부모들의 제보를 받고 초등학교 저학년 수강생들을 피겨 코치가 지속적으로 학대했다는 혐의로 경찰의 수사 선상에 올랐다는 사건 기사를 썼다.

며칠 뒤 유명한 변호사의 전화를 받았다. 학대 가해자를 특정해 보도하면 아동학대처벌법 35조(비밀엄수 등의 의무) 위반으로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며 기사를 내리지 않으면 고소하겠다고 했다. 아동학대처벌법은 신문 종사자 등이 아동보호사건 관련 아동학대행위자, 피해아동, 고소인, 고발인 또는 신고인의 인적사항 등을 신문 등 출판물에 싣거나 방송매체를 통해 방송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피해아동이나 고소·고발인, 신고인의 인적사항을 기사에 담아선 안 된다는 규정은 2차 피해를 막기 위함일 것이다. 하지만 인적사항을 특정해선 안 된다는 대상에 학대 행위자가 포함된 이유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공적 인물의 경우 신원을 명시한 실명 보도나 초상 보도가 허용된다는 판례도 있다. 이 코치는 국가대표 선수를 여러 명 육성해냈다. 코치가 공적 인물인지에 대한 판단은 엇갈릴 수 있다. 그러나 개별 법이 가해자를 특정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 것은 법령의 숨은 오류 아닌가 싶다.

/손성배 사회부 기자 so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