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제대로 응답하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고통받는 을에 필요한건 法보호 확신과 믿음
"영세 사업주에 공평·법 집행" 헛구호 안되길
이후 2017년 5월 공정(公正)의 가치를 국정철학으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라는 문 정부의 캐치프레이즈를 어떤 방식으로 현실에서 구현할지에 대한 궁금증이 한껏 고조된 시점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재벌 저격수로 명성을 떨친 김상조 한성대 교수(현 청와대 정책실장)를 초대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임명함으로써 한국사회에 뿌리박힌 불공정 관행을 타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김상조 전 공정거래위원장도 취임사에서 '을의 눈물'을 이야기하며 발을 맞췄다.
그는 "우리 사회가 공정위에 요구하는 것은 대규모 기업집단의 경제력 오남용을 막고, 하도급 중소기업, 가맹점주, 대리점사업자, 골목상권 등 '을의 눈물'을 닦아달라는 것"이라며 "공정위는 호소를 듣고, 피해를 구제하며, 재발 방지책을 마련할 책무가 있다"고 밝혔다.
대리점 갑질 해결은 김상조 전 위원장의 주요 추진 과제 중 하나였다. 취임 2개월 만에 전 산업에 걸쳐 대대적인 본사-대리점 간 거래 실태조사에 나섰고, 이듬해에는 '대리점거래 불공정 관행 근절대책'을 직접 발표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2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대리점 갑질문제는 도통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던 김상조 전 위원장은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을의 눈물'은 현재 진행형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공정위에 대한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다뤄졌던 '천재교육 총판(대리점) 갑질사건(2019년 10월8일자 1·3면 보도="천재교육 갑질 의혹, 공정위 철저한 규명을")'이다. 이는 천재교육 대리점주 십수명이 "본사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갑질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지난해 8월 공정위 측에 불공정거래행위 신고서를 접수한 사건이다.
점주들은 '교사·연구용 교재 등 판촉비용 전가', '징벌적 페널티 부과', '반품 제한(20%)' 등의 시정을 요구했고, 본사는 점주들의 주장이 사실무근이라며 팽팽하게 맞섰다. 당시 국감에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김성원(동두천·연천) 의원은 조성욱 위원장에게 "천재교육 본사가 받고 있는 갑질 의혹을 공정위가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최초 불공정거래행위 신고서가 접수된 지 1년2개월여가 지난 현재까지 해당 사건과 관련한 처분이 나오지 않고 있다. 신고자에게도 진행 상황을 공유하지 않은 탓에 점주들은 안개가 자욱한 밤길을 걷는 듯한 불확실성에 하루하루 고통받고 있다. 막다른 길에 내몰린 상태에서 공정위에 건 마지막 희망조차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만 남았다.
'을의 눈물'이 비단 천재교육 점주들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본사와 불합리한 계약관계에 놓여 있는 수많은 대리점주들의 간절한 호소에 공정위가 제대로 응답하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김상조 전 위원장으로부터 배턴을 이어받은 조성욱 위원장은 취임사를 통해 "공정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무겁게 받아들여 영세한 사업주에게도 공평하고 적극적으로 법이 집행된다는 확신을 드려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의 말처럼 고통 속에 있는 모든 '을'들에게 필요한 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확신과 믿음'뿐이다. 이번 만큼은 헛구호가 되지 않기를 바라본다.
/이재규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