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증거 은폐·현장 훼손 안해"
병점 초등생 실종사건 범행도 '증언'
가석방엔 선 그어… "지금이 낫다"
"잘못된 것 바로잡고 위로 됐으면"
'경기남부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이라고 자백한 이춘재(57)가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다"고 말했다.
수원지법 형사12부(부장판사·박정제)는 2일 오후 1시30분 윤성여(53)씨의 강간치사 등 사건 재심 9차 공판에 이춘재를 증인으로 불렀다. 이춘재는 청록색 수형복에 스포츠머리를 하고 발목에 전자장치를 부착한 채 법정에 나왔다. 언론을 통해 공개된 젊었을 때 사진보다 새치가 많고 눈가에 깊은 주름이 패인 모습이었다.
이춘재는 지난해 9월18일부터 이어진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수사에서 전문 프로파일러의 공감과 진실을 말하라는 권유에 마음이 움직여 화성 등지에서 저지른 살인 10건과 병점 초등생 살인사건 등 미제 2건, 청주 2건 등 총 14건의 살인 사건을 자백했다고 증언했다.
이춘재는 "범행할 때 증거를 은폐하거나 현장을 훼손하지 않았다"며 "수감 생활 도중 법무부에서 유전자(DNA)를 채취해 등록할 때부터 경찰들이 올 줄 알았는데, 작년에 DNA가 일치한다면서 경기도에서 경찰이 와서 처음엔 진술을 거부하다 털어놓았다"고 말했다.
8차 사건의 경우 이춘재의 집과 범행 장소인 피해자 박모(당시 13세)양의 집이 매우 가까웠는데도 용의선상에 오르지 않았다. 이춘재는 "당시 내로라하는 경찰관, 수사관 수백명이 왔다 갔다 했지만, 보여주기식 아니었나 싶다"고 했다.
이날 윤성여씨 측 변호인인 박준영 변호사는 이춘재에게 병점 초등생 실종 사건에 대해서도 캐물었다.
이춘재는 이 사건도 극단적 선택을 하려고 야산에 올라갔다가 초등학생이 도망을 가길래 쫓아가 강간 살해했다고 법정에서 공개 자백했다.
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 '살인의 추억'을 본 적이 있다고도 답했지만, 어떠한 감흥도 없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숱한 강간살해 사건의 범행 동기에 대해선 답을 하지 못했다. 성욕을 채우기 위해 여성들을 제압, 강간하고 살인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이춘재는 "그런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춘재는 "불나방이 불을 찾아 들어가는 것처럼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런 일들이 일어나게끔 행동을 하고 있었다"며 "(사람을 죽이면) 순간적으로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지만, 돌아서고 나면 끝"이라는 말로 범행 동기를 자신도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가석방으로 출소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춘재는 "통제 안에서 보호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나가서 생활한다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있지만, 지금이 낫다. 조두순이 나간다고 해서 난리가 났는데, 내가 나간다고 하면 더 한 얘기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이춘재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모든 사건의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의 마음에 작은 위로가 되고 마음의 평화를 찾아서 앞으로의 삶이 그나마 편해지기를 바라는 단순한 마음일 뿐"이라고 했다.
/손성배·신현정기자 so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