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굳으면(Ctrl+c) 절대 안바꿔(Ctrl+v)
요즘 정치권에 일명 '똥고집' 유행처럼 번져
난 항상 옳고 잘못없다 '편향'… 종국엔 낭패
현안마다 치고받는글 복붙전파… 국민 눈살

2020110801000277600014371
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
Ctrl+c, Ctrl+v. 컴퓨터를 이용한 문서·이미지 작업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축키다. 복사하려는 글이나 그림을 지정하고 자판의 Ctrl키와 c키를 함께 누른 뒤 다시 붙이고 싶은 곳으로 커서를 옮겨 Ctrl키와 v키를 함께 누르면 그대로 옮겨진다. 요즘은 줄인 말로 '복붙(복사해서 붙여넣기)'이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같은 의미로 Copy&Paste를 줄인 코피페(コピペ)라고 한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한 번 생각이 굳어지면(Ctrl+c), 다른 상황에서도 바꾸지 않으려(Ctrl+v)는 현상이 늘고 있다.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막무가내식 '고집'을 피우는 것이 정치권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분위기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심리적 상태를 편향(偏向, bias)이라고 한다. 우리의 뇌는 신중하게 생각하기보다는 쉽게 떠오르는 정보나 주변 상황을 기준으로 삼으려는 경향이 있는데, 특히 스스로 잘못한 오류를 깨닫거나 인정하기를 극히 꺼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쉽게 '똥고집' 정도로 풀이하면 되겠다.

편향보다 한층 더 위험한 상태를 '선택 지지 편향'이라고 한다. 심각한 수준의 '오만'이라고 보면 된다. 이런 심리 상태에 빠진 경우 자신은 틀린 게 없고, 항상 옳다는 생각에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특징을 보인다. 명백한 오류나 잘못이 드러나도 자신이 맡은 일이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고, 성과를 내고 있다고 우긴다. 조직의 리더들이 이런 심리상태에 있다면 나중에는 정책 실패, 외교 단절, 예산 낭비, 인사 참사 등의 참담한 결과로 나타난다.

'술은 먹었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 '성폭력 처벌을 받았지만, 성폭력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이유는 '확증 편향'일 가능성이 크다. 고의성도 없었고, 실제 행위를 하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죄인으로 몰고 있다는 범죄자의 '피해망상'의 한 형태다. 영국의 언론인 톰 필립스는 '인간의 흑역사'라는 저서에서 "사람은 자기의 믿음에 부합하는 증거만 선택적으로 취하고 다른 증거는 외면하는 데서 확증 편향이 비롯된다"고 했다. 그는 "자기와 정치 성향이 비슷한 매체를 통해서만 뉴스를 보려는 경향이 이와 관련 있다고 할 수 있다"며 "심각하게는 음모론자를 절대 설득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똥고집, 오만, 피해망상이 '집단 사고'에 영향을 미치면 자신들의 무능에 대해 무지해지는데 결국, 자신들의 결점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사업을 낙관하고 자신하다 낭패를 반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갈등, 여당의 내로남불의 독주, 야당의 무력한 국정 견제 등이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누구라 할 것 없이 잘못과 실책을 인정하지 않는다. 죄다 남의 탓만 한다. 이전 정권에서부터 건국 초기의 사례까지 들춰대며 '저들의 탓'이라는 비난과 변명뿐이다. 때로는 상대방의 말이 맞고, 그들의 생각이 옳을 때가 있기 마련인데도 절대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예전에는 그래도 남이 지적하면 받아들이는 시늉이라도 했다. 지금은 씨도 안 먹힐 얘기다.

올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보여주었듯이 자기 뜻이나 생각이 맞지 않으면 장관이든 국회의원이든 아무렇지 않게 서로 막말로 치고받는다.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에서조차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존중과 배려는 사라졌다. 지금은 국회의원을 '어이~'라고 부른다. 국회를 얼마나 우습게 보면 그런 소리가 나오겠는가. 게다가 일부 소신도 능력도 없는 정부 관료들은 잘못된 정책에 대해선 입을 꾹 닫은 채 해명 없이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얘기만 늘어놓다가 핀잔받기 일쑤다.

굵직한 정치 현안들이 쏟아질 때마다 각 진영을 대표하는 인사들의 글이 SNS에 올라오면 지지자들은 바로 'Ctrl+c'와 'Ctrl+v'를 이용해 순식간에 전파한다. 정치인들의 SNS는 하루하루가 말(語)의 '복붙'으로 치고받는 전쟁터가 됐다. 이 전쟁터에서는 우리 편이 아니면 무조건 짓눌러야 한다는 '선택 지지 편향'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몰려다닌다. 뜻을 달리하는 상대를 선의의 경쟁자로 존중해주고, 긴장 관계의 동반자로 여기던 시대는 지났다.

/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