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 재활용·일자리 창출 '신산업' 각광… 연간 5천억원 경제적 가치 창출
車 재활용률 89% 수준, 목표치 95% 매년 미달 '생산자책임제 도입' 관건
기름 찌꺼기 방치 '과거 폐차장' 사고발생도… 업계선 '자정 노력' 목소리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차들, 바닥에 고인 기름, 새카만 때와 지워지지 않는 얼룩….
'폐차장'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흔히 떠올리는 모습들이다.
누아르 영화의 단골배경으로 등장하던 폐차장이 이제는 시대가 변해 깨끗하고 친환경적인 모습으로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다.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에 맞춰 자원을 재활용하고 일자리도 창출하는 새로운 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못쓰게 된 자동차를 고철로 만들던 과거를 뛰어넘어 환경을 보호하는 기간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자동차해체재활용'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 폐차 'X', 자동차해체재활용 'O'
폐차의 다른 말 '자동차해체재활용'이라는 단어는 10여년 전 등장했다. 친환경적인 자동차 해체와 부품 등의 재활용을 통해 자원의 순환을 돕고 경제성을 창출한다는 의미에서 폐차 보다 진일보한 뜻을 담고 있지만 아직도 일반인에게는 생소하게 다가온다.
현재 전국적으로 500여 곳이 운영 중인 자동차해체재활용업체들은 자동차관리법과 자원순환법에 근거해 폐자동차를 수집해 해체하는 일을 한다. 자동차에서 떼어낸 각종 합성수지와 고무, 유리 등은 각각 모아 전문 처리업체에 보내고 쓸 수 있는 부품들은 중고거래를 통해 재사용을 유도한다.
특히 부품의 재사용과 재제조(Remanufacturing)는 신사업 분야로 주목받는다. 중고부품은 차종이 단종되었거나 부품을 저렴하게 구하고 싶은 이들에게 애용되고 있으며 해외에서도 러브콜이 이어지는 추세다.
그밖에 폐자동차에서 나오는 크롬, 망간, 니켈 등 희소 금속은 스마트폰이나 전기차 배터리 등 첨단제품 제조에 다시 사용될 정도로 유용하게 쓰인다. 폐자동차 1대에서 나오는 희소금속은 4.5㎏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를 기점으로 국내 등록 자동차가 2천400만대를 넘어섰다. 이는 인구 2.16명당 자동차 1대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매월 10여 만대의 새로운 자동차가 주행을 시작하고 있다.
등록차량이 늘어나는 만큼 폐차도 발생한다. 연도별로 2018년엔 89만대, 2019년엔 97만대가 해체됐으며 올 10월 현재까지 79만대가 자동차해체재활용업체에서 처리됐다.
자동차해체재활용업의 전체 산업의 규모는 약 8천억원대로 부품 재사용과 각종 재활용을 통해 연간 약 5천억원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것으로 업계는 추산했다. 자동차해체재활용을 통해 생산되는 고철과 비철은 연간 100만t 이상이며 차에서 나온 물질 중 약 90%는 다양한 경로로 재활용된다.
■ 생산자책임제 도입될까?
현재 자동차해체재활용업계의 이슈는 생산자책임제(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EPR)의 도입이다.
EPR은 재활용을 촉진시키기 위해 생산자에게 재활용 의무를 부과하는 것을 말한다. 재활용 목표치를 의무적으로 달성하게 해서 목표 미달시 재활용분담금을 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EPR은 현재 형광등, 윤활유, 타이어 등에 적용된 상태로 자동차에도 이를 도입하는 방안이 수년간 논의돼왔다.
현재 우리나라의 자동차 재활용률은 89% 수준으로 목표치인 95%에 매년 미달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자동차를 폐차해 나오는 철금속, 비철금속, 재활용 가능 부품은 문제가 없지만 비유가성 물질(플라스틱, 유리, 고무, 시트 등)은 처리에 돈이 들기 때문이다.
자동차에 EPR도입을 찬성하는 측은 "EPR을 도입하면 재활용률이 높아지고, 자원 재활용의 효율적 관리가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 독일의 경우 자동차 EPR을 도입했더니 비유가성 물질의 재활용이 활발해졌다는 사례가 있다.
수년간 자동차 EPR 도입을 주장해 온 남양주시 화도읍 차산리에 위치한 동강그린모터스의 최호 대표는 "자동차 EPR을 도입하면 환경문제라는 중요 과제를 해결할 수 있을 뿐 더러 자동차해체재활용업체가 해체 작업을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업체별로 인력을 확충하는 등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업체가 가질 경제적 부담은 고철 단가 상승과 비유가성 물질의 유가성 전환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라며 "자동차 EPR도입은 자동차 재활용률을 95%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 아직도 남아있는 과거의 폐차장 모습… "자정 노력 필요"
폐유가 땅으로 스며들지 않도록 포장하고 바닥의 배수관을 통해 정화시설을 연결해 마치 공원과도 같은 환경의 자동차해체재활용업장도 일부 있지만 아직도 도내에는 진득한 기름 찌꺼기로 뒤덮인 폐차장이 남아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7월 고양시 일산서구 덕이동의 한 폐차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불은 소방서 추산 7억2천591만원의 재산피해를 내고 나흘 만에 꺼졌다. 업체도 큰 피해를 봤지만 수만명의 인근 주민들이 수일 동안 불안에 떨고 불편을 겪어야 했다.
당시 화재 원인을 조사한 경찰과 소방당국은 폐차장 작업자들이 산소 용접기로 차량을 절단하고 해체하는 과정에서 불꽃이 바닥의 기름 찌꺼기에 옮겨붙은 정황을 포착했다. 휘발유 잔여분이나 엔진오일, 브레이크오일, 부동액 등 각종 물질이 무분별하게 방치됐던 폐차장 환경이 큰 재난으로 이어진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업체들 사이에도 이에 대한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이유다.
자동차해체재활용업계 관계자는 "일부 선도적인 업체가 친환경적 설비를 갖추고 미래지향적 경영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대다수 폐차업체는 영세하고 열악한 것이 현실"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환경을 정비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과거 지저분한 오염물질 범벅의 폐차장 이미지를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위기감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변화하는 정책과 친환경적 가치관에 걸맞도록 스스로 개선하려고 하는 업체들의 노력을 지켜봐 달라"고 했다.
남양주/이종우기자 ljw@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