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구 류기안씨 6·25회고 수기
비위생적 환경 감염 매개체 서술
故 유정수씨 이동시기와도 겹쳐
국가의 준비 부족으로 비위생적인 환경에 근무한 국민방위군 2만명 가량이 전염병인 발진티푸스(11월 26일자 1면 보도=한국전쟁 당시 '발진티푸스 창궐', 국민방위군 이동과 시기 겹친다)로 숨졌다는 주장과 관련해 이를 뒷받침할 생존 국민방위군의 증언이 나왔다. 이 국민방위군 생존자는 자신의 경험을 담은 수기를 통해 당시 열악한 환경을 가늠할 수 있는 기록 증거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29일 인천시 연수구 자택에서 만난 국민방위군 출신 류기안(89)씨는 "틈만 있으면 양지 쪽에 앉아서 옷을 들고 이를 털곤 했다. 이 수 천 마리가 고여 있어 다닐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국전쟁 당시 국민방위군의 상황을 전했다.
이날 류씨와의 인터뷰는 발진티푸스 관련 경인일보 보도를 접한 류씨의 아들 류재석씨가 기자에게 연락을 해오며 성사됐다. 국민방위군 류씨는 당시 상황을 생생히 전달해 줄 수기를 지니고 있었다.
수기에는 강화도 출신인 류씨가 1950년 12월 20일 고향을 떠나 1951년 초 부산에 이르는 과정이 서술돼 있다. 류씨의 기록은 앞선 보도로 확인된 고 유정수(1925~2010)씨의 이동시기(1950년 12월 23일 화성 출발)와 겹친다.
류씨는 200여명의 동향 청년과 함께 '향도'라고 불리는 국민방위군 인솔자를 따라 부산까지 이동했고, 이후 제주도로 옮겨 훈련을 받았다. 류씨는 국민방위군 장교로 임관돼 전방 부대에서 한국전쟁을 치렀고, 이후 육군본부 인사과·군수과로 이동하게 되는데, 류씨의 수기는 육군본부 군수과에 근무했던 1957년 작성됐다.
수기는 1957년 결혼을 앞두고 한국전쟁 때부터 현재까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는 형식이다.
해당 수기에서 눈에 띄는 장면은 한국전쟁 당시 국민방위군의 발진티푸스 피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들이다.
부산 경험을 서술한 수기에는 "아침 햇볕이 솟아 따뜻해질 무렵에 가마니 방바닥을 디려다(들여다) 보면 움질거리는 것이 모두 이였습니다. 이런 고생은 호사하고 어찌도 복합한 곳에 인원이 많은지 이루 말할 여지조차 없었습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발진티푸스는 머릿니((head louse)가 아닌 몸니(body louse)를 통해 전염되며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다수가 밀접 거주할 때 크게 확산한다.
1951년 1·4후퇴를 앞두고 당시 정부는 국군의 예비군 성격인 국민방위군 수십 만명을 모집했으나 보급품을 마련하지 못해 최소 수만의 장병이 굶거나, 얼거나, 전염병에 감염돼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 관련기사 3면('국민방위군' 류기안씨가 들려준 한국전 당시 열악한 상황)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