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0리이상 걷고 굶기 밥먹듯"
한겨울 남하길에 얼어 죽거나 아사

훈련장선 천막서 200명 '밀집생활'
발진티푸스사태 먼저 파악한 미군
인체에 유해한 'DDT'로 방역 조치


경인일보 보도를 통해 최초로 공개되는 국민방위군 류기안(1932년생)씨의 수기에는 국민방위군의 열악한 상황을 생생히 보여주는 대목이 적지 않다. 지금까지 보도와 학술연구를 통해 알려진 이동과정에서의 피해뿐 아니라 전염병 감염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된 당시 교육대의 상황이 담겨 있다.

29일 입수한 류씨의 수기에는 "곤란을 겪으면서 하루 100리 이상을 거름(걸음)을 하고 굶기는 밥먹듯 하고 매일같이 걸음으로 세월을 보내는 때였습니다. 어느 때는 잘 때가 없어서 온종일 것고(걷고) 나서도 밤을 낮삼아 걸음을 겄는(걷는) 것이었습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정부가 국군의 예비군 성격으로 모집한 국민방위군은 징집자 대부분이 자발적으로 국가의 부름에 응한 사람들이었다는 게 생존자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한국전쟁이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조금이나마 국가에 도움이 되고자 징집에 응했지만, 1·4후퇴로 서울을 떠날 계획이었던 정부는 이들에게 지급할 보급품을 마련하지 못했다.

옷이 없어 12월부터 시작된 한 겨울의 남하길에서 얼어 죽은 국민방위군이 부지기수였고, 민가에서도 식량을 구하지 못해 아사하는 국민방위군도 나타났다. 더 큰 문제는 20여일 이상을 이동해 교육대에 도착한 뒤에는 전염병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는 것이다.

류씨는 "그곳(교육대)에서 훈련이 시작되는데 먹고 자고 하는 불편은 이루 말할 수도 없고 모두가 사람들이 도깨비처럼 보였습니다. 2·3개월씩 된 머리를 깍지도 못하고 얼마씩 먹는 것도 없는데 왼 이는 그다지도 많은지"라고 썼다.

또 "온종일 밥을 먹었다고는 그날 새벽 4시경에 어름(얼음)같은 밥 한 주먹 먹은 것 밖에 없이 늦은 밤 열두시까지 떨고 난 후에 어느 천막 속으로 200명을 몰라넣는(몰아넣는) 형편이었습니다. 한 천막에다가 200명씩 지버(집어)넣었으니 잠을 자기커녕 앉어있을 자리도 비조바서(비좁아서) 밤새 고생을 하다"라는 구절도 있다.

열악한 환경 속 밀집생활은 발진티푸스 대확산을 부추겼다. 1951년 발진티푸스 사례는 3만2천11건으로 전년 대비 10배 이상 폭증했다. 이런 국민방위군의 상황을 가장 먼저 파악한 건, 미군(주한 유엔 민간원조 사령부) 쪽이었다.

교육대에 퍼진 전염병을 잡기 위해 미군은 인체에 유해하다는 이유로 현재는 사용이 금지된 DDT(유기염소 계열의 살충제·농약)를 몸에 직접 살포하도록 조치했다.

제주도로 이동한 뒤 상황을 기록한 류씨 수기에도 이 내용이 나온다. "몇 명씩 데려다가 옷을 벗기는 것이었습니다. 빤쓰(속옷)조차 모조리 다 벗기더니 나중에는 빤쓰부터 샷스(셔츠) 작업복 방한복 모조리 주어서 뜨뜻하게 입고 나서는 이 약을 모조리 쳐주는 것이었습니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