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타락한 정권일수록 자신들 보호위해
사법부 장악후 압박 '선택적 법 집행' 강요
'정의·자유 수호 최후의 보루'라는 대법원
올바른 판단 신뢰땐 '선택' 설자리 없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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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
역사적으로 '선택적 법 집행(selective enforcement of law)'은 '법 앞의 평등'이라는 가치를 훼손했다. 17~18세기에는 인간을 재산으로 여기는 노예제도가 성행했지만 노예 소유주 중에 인권을 짓밟았다고 처벌받은 사람은 없었다. 아프리카계 흑인이나, 계급사회의 천민, 특정 종교 국가의 여성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근대 이후 최근까지도 군주나 권력자, 성직자 등 지배층에만 법 앞의 평등이 적용됐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은 중세나 근대가 아닌 20세기 대한민국에서 나온 말이다.

중세시대에 자행된 '신명재판(神明裁判)'은 선택적 법 집행의 대표적 사례다. 신명재판은 오직 '신의 심판'만이 유무죄를 결정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신이 주관하는 재판이니 "무고한 사람을 벌주지 않는다"는 믿음은 증거나 무죄추정원칙, 피의자의 인권보호 등 인간의 기본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신명재판에서 자주 사용된 방식은 '물건 건지기'다. 물이나 기름이 끓는 솥에 돌이나 쇠붙이 등을 넣어놓고 건져내는 방식이다. 손에 상처나 화상을 입지 않는 사람이 재판에서 승소한다.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는 뜨겁게 달군 솥이나 그릇, 쇠를 맨손으로 들게 하고 일정한 거리를 걷게 한 뒤 화상을 입지 않으면 무죄로 판결했다.

중세 유럽과 아시아에서 공통으로 쓰인 방법은 용의자의 손발을 묶은 뒤 물속에 넣는 방법이다. 현장에서 바로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재판관들이 선호했다고 한다. 재밌는 사실은 유럽에서는 범인이 물에 가라앉으면 무죄로, 반대로 아시아에서는 유죄로 인정했다는 것이다. 같은 재판방식인데도 해석은 반대로 했다. 유럽에서는 "죄 없는 사람은 깨끗한 물이 품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아시아에서는 "신이 목숨을 살려주기 위해 물 위로 띄운 것"이라고 해석했다.

마다가스카르에서는 19세기까지도 독성 있는 열매를 먹고 살아나면 무죄로 판결하는 바람에 수천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고 한다. 시체를 놓아둔 관 옆에 살인의 용의자를 세우고 관에서 피가 흐르면 범인이라고 판단하거나 커다란 빵을 한번에 먹도록 하고 체하지 않으면 무죄로 판단하는 웃지 못할 이러한 재판방식은 한동안 동서양에서 벌어졌다. 이런 와중에서도 피고를 무죄로 만들기 위해 물을 살짝 데우거나 솥을 적당히 달궈 화상을 입지 않게 하는 사기재판도 벌어졌다고 하니 옛날에도 '지인 찬스'로 재판관을 매수하려는 비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명재판과 같은 선택적인 법 집행의 폐단은 죄 없는 사람을 처벌하고 범죄자를 무죄로 풀어주었다는 것이다. 폐단이 거듭할수록 학자들 사이에선 신명재판에 대해 과연 신(神)이 하느님인지, 악마인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점차 사라졌다.

21세기 전 세계 민주사회에서도 정치인 비리 재판이 끊일 날이 없다. 권력을 잃은 쪽에서는 자신들의 비리 재판 결과를 "정치적 탄압"이라며 인정하지 않고, 현 정권 인사들의 비리 재판 결과에 지지자들까지 나서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낸다. 이념과 정파에 상관없이 자신들이 지지하는 인사를 처벌하는 재판관을 양심 없는 부패한 법관으로 몰아간다. 특정 집단 중에는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사법부에 '선택적 법 집행'을 요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권력은 기본적으로 '부패'와 '타락'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부패하고 타락한 정권일수록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사법부를 장악하고 싶어한다. 역사적으로 그러한 권력들이 사법부를 장악한 경우 사법부를 압박해 '선택적 법 집행'을 강요했다.

현대의 국가 체제에서 입법부와 행정부 외에 사법부를 분립한 이유는 '법 앞의 평등'이라는 법의 기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대법원을 '정의와 자유를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라고 부르는 것이다. 대다수 국민은 1, 2심 재판 과정에서 법 해석이나 양형에 다소 미흡한 판단이 있더라도 경륜과 자질을 갖춘 대법관이 법리를 명확하게 분별하고 올바르게 판단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한 믿음이 강한 신뢰로 이어질 때 '선택적 법 집행'이 들어설 자리는 없을 것이다.

/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