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뤄낸 가장 큰 합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조성이었다. 서해 북방한계선 해역을 평화수역으로 정해 남북 공동어로와 수산물 교역을 진행하는 게 1차 목표였다. 최종목표는 인천과 개성·해주를 잇는 남북 경협벨트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후 북한의 핵실험 재개와 연평도 포격사건 등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진전이 없다가 11년 후인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판문점 선언'을 통해 다시 순풍을 만났다. 두 달 뒤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박남춘 후보는 서해평화협력시대 구상을 제1호 공약으로 내걸고 인천광역시장에 당선됐다. 자신을 정치의 길로 이끌었던 노 대통령의 '유지'를 받드는 일이기도 했다.

공약의 핵심은 서해평화협력청 설치, 강화 교동 평화산단 조성, 유엔 평화사무국 유치, 남북공동어로구역 조성과 해상파시 추진, 인천~해주~개성 서해평화도로 연결이었다. 하지만 서해평화도로 1단계 구간인 영종~신도 교량사업(길이 3.82㎞, 왕복 2차선)이 이달 첫 삽을 뜨게 됐을 뿐 나머지는 전부 감감무소식이다. 지방선거가 있던 그해 같은 당 송영길 의원이 발의한 '서해평화협력청' 설치 법안은 20대 국회에서 계류됐다가 폐기됐다. 교동 평화산단 조성 역시 현재로선 요원한 상태이고, 다른 사업들도 시작의 토대가 마련되지 못했다. 박 시장으로선 국제정세의 변화를 원인으로 꼽겠으나 엄밀하게 따지면 애초 중앙정부의 일과 지방정부의 일이 정치(精緻)하게 구분·설계되지 못한 탓이라고 보는 게 맞다.

13년만에 인천시가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합의 내용을 업그레이드하는 신 서해평화협력 특별지대 구상안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급변하는 남북관계와 국제환경 변화에 따라 보완이 필요해서라고 한다. 보완되는 구상안은 기존 계획 외에 나진·하산, 산둥·신의주 등 동북아 지역의 초국경 협력지대 사례도 분석해 실현 가능한 남북협력 사업의 비전을 제시할 계획이다.

다 좋은데 부디 지방정부의 현실과 실정에 맞는 안을 마련하길 당부한다. 남북협력사업을 국가나 중앙정부가 독점할 이유는 물론 없다. 지방정부 차원의 청사진도 필요하다. 하지만 지방정부의 능력을 넘어서는 설계도를 짜게 되면 지금 보고 있는 것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되어 버리기 십상이다. 식상한 말이지만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면 안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