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백성 변호사 '외지부'를 빗댄 말
최근 현직판사의 탄핵소추안 발의를 보며
민주주의 부정·공정 재판에 害 될까 걱정
외지부는 글과 법을 모르는 백성에게 큰 힘이 되기도 했지만, 법률 지식을 이용해 악행을 저지르는 일도 다반사였다. 기록을 보면 중종 때 외지부 유벽은 형조 관리에게 뇌물을 주고 심문 내용을 빼내 의금부에 수감된 의뢰인에게 답변을 미리 알려 주었다. 왕실 인사들이 외지부와 결탁해 이익을 도모했다가 적발됐다. 백성을 꼬드겨 소송을 벌이며 법을 이용해 사회를 어지럽힌 일로 연산군은 외지부 16명을 함경도로 유배 보냈다. 효종 때는 외지부 최선석, 최선협이 문서를 위조해 훈련도감 포수 안사민을 노비로 만들려 시도했다. 이렇듯 외지부는 조선 조정의 골칫거리였다. 조정은 외지부를 '이치에 닿지 않는 송사를 잘 일으키는 놈'이라는 뜻으로 비리호송자(非理好訟者)로 불렀다. 성종실록(성종3년, 1472년 12월 1일)에는 "시시비비를 어지럽히고 관리들을 현혹해 판결을 어렵게 하는 자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상소문이 기록돼 있다.
최근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을 어지럽히고, 판사들에게 겁을 줘 판결을 어렵게 하려는 여론몰이에 사법부가 당혹해 하고 있다. 단순히 판결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는 게 아니다. 판사에 대한 폄하 발언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판새(판사 비하)', '법레기(법관+쓰레기)', '검찰대행업자'라고 헐뜯는다. 지난 1일에는 국회에서 현직 판사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처음으로 발의됐다.
판사들에게 '법리와 논거'를 따지지 말고, '헌법의 가치로도 판단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것은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다. 양심을 버리고 법의 공정 가치를 포기하라는 것과 같다. 혹시나 이대로 가다 검은 것을 흰 것이라 하면 무조건 희다고 말해야 하는 세상이 올까 두렵다. 휴고상을 네 차례나 수상한 미국의 저명한 인문학자이자 작가인 로버트 앤슨 하인라인은 선전 선동술과 세뇌교육에서부터 일반 홍보나 광고에까지 흔히 사용되는 방법으로 '흑백의 두 가지 모순'을 설명한 바 있다. 하나는 '적에게 사용할 때는 분명 사실과 모순되게 검은 것을 희다고 뻔뻔하게 주장하는 버릇'을 의미한다. 다른 하나는 '당원에게 사용할 때는 당의 규율이 요구하면 검은 것을 희다고 기꺼이 말하는 충성심'을 말한다. 하인라인은 그들이 검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희다고 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세력을 단결시키고, 상대방을 기만하려는 전략으로 해석했다.
'미스 함무라비'의 저자 문유석 판사는 저서 '개인주의자 선언'에서 "종교, 문화 따위가 다수의 의견이라고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만약 다수의 의견이 늘 옳다면 인류는 아직도 천동설을 믿고 잔인한 사적 보복을 허용하며 인종 간 결혼은 금지하고 성적 소수자를 박해하고 있지 않을까. 다수결의 원칙을 중시하는 민주주의에서 다수에 대한 정교한 견제장치도 같이 마련하고 있는 이유"라고 지적한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여러 나라가 공정한 재판과 독단적 판단을 견제하기 위해 고등법원과 대법원에 이르는 삼심제도를 시행하고 별도의 헌법재판소 등 제도적 보완장치까지 마련하고 있다. 세상 모든 사람이 판사들에게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판결해 달라고 요구하면 세상은 극심한 혼란에 빠질 것이다. 헌법에서 판사들에게 인신을 구속하고, 재산권을 강제할 권한을 부여한 것은 판사들이 법률과 양심에 따라 정의를 수호한다는 국가와 국민의 신뢰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진호 인천본사 디지털취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