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송도고등학교가 독립운동의 산실로 재조명을 받고 있다. 무려 100명에 가까운 동문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될 전망이 나오면서다. 올해로 개교 115주년을 맞는 송도고는 1906년 10월3일 개성 송악산 기슭 산지현에서 개원한 한영서원이 뿌리다. 이후 1917년 3월20일 사립 송도고등보통학교로 교명이 바뀌었고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1952년 인천 신흥동으로 피란 개교했다.
보도에 따르면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독립운동사연구소는 일제에 맞선 송도고 출신 독립유공자 73명을 새롭게 발굴, 조만간 국가보훈처에 독립유공자 포상을 신청할 계획이다. 앞서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는 지난해 광복절을 앞두고 13명에 대해 포상 신청을 한 바 있다. 여기에다 이미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11명을 합하면 송도고 출신으로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았거나 포상 신청 대상인 인물은 97명이 된다. 실제로 포상이 이뤄지는 인물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한 학교에서 100명에 가까운 이들이 일제강점기, 제국주의에 맞서 민족정기를 찾으려다 고초를 겪었다는 점은 사례를 찾기가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이 정도면 학교 자체가 독립운동의 산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간 알려지지 않은 독립유공자를 발굴하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찾는 작업이자, 민족의 자존심을 높이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송도고 출신 독립유공자 발굴은 독립운동사 측면에서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특히 송도고는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역사를 갖고 있는 학교였다. 이 학교의 설립자가 독립운동을 하다 일제 말기 변절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윤치호로 알려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가 지난해 10월 송도고 출신 독립유공자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송도고의 진짜 설립자가 윤치호가 아닌 미국인 목사 왓슨(W.A.Wasson)이란 사실을 새롭게 밝혀냈고, 송도고는 비로소 '친일파가 설립한 학교'라는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무려 73명 독립유공자의 활약상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주목을 한몸에 받고 있다. 독립운동사에 한 획을 긋는 성과물이 아닐 수 없다. 잘못 알려진 역사를 바로잡고 선조들의 발자취를 찾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 작업인지 송도고의 사례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사설]인천 송도고 독립유공자 발굴의 의미
입력 2021-02-15 20:22
수정 2021-02-1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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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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