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포천의 한 농가 비닐하우스에서 거주하던 외국인 노동자가 숨졌다. 경찰은 지병에 의한 사망으로 추정했으나 시민단체는 열악한 주거 환경이 죽음으로 내몰았다며 대책을 촉구했다. 이 참에 인권과 노동권 보호를 위한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지자체 조사 결과 비닐하우스내 숙소는 비료와 비닐, 농약이 비치됐고, 식자재가 널려 있는 등 안전과 위생에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고용노동부가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이주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를 외면한 채 고용주 이익만 대변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파문이 커지자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섰다. 고용노동부는 비닐하우스를 숙소로 제공하는 농가에는 외국인 근로자를 배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열악한 숙소를 제공하는 사례가 잦은 지자체에 계절 근로자를 배치하지 않기로 했다. 이 경우 배치대상에서 제외된 지자체의 여타 농가들도 계절 근로자를 배정받을 수 없게 된다. 지자체가 관내 농가들을 보호하기 위해 숙소 문제를 더 적극적으로 철저하게 관리하도록 하겠다는 취지에서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 등 관련 부처들도 숙소 환경 개선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하지만 농가들은 물론 지자체들도 현실적 어려움 때문에 정부 방침을 이행하기 힘들다며 난색이다. 외국인 근로자 숙소 상당수가 컨테이너 등 가설건축물인 만큼 갑자기 숙소를 마련하기 어렵다는 거다. 비닐하우스 주택의 경우 철거를 하고 땅 용도를 바꿔 건물을 지어야만 한다. 특히 아파트나 연립주택 등 주거시설이 마땅치 않은 농촌 지역에서 정부의 기준에 맞는 숙소를 마련하는 게 가능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천 대월농협은 이 같은 어려움을 호소하며 이천시에 청원을 내기도 했다. 농가들은 특히 코로나 19로 인해 일손 부족 현상이 심화하는 마당에 계절노동자 공급마저 끊기게 됐다며 현실성이 떨어지는 대책으로 어려움만 가중되게 생겼다고 불평한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권은 마땅히 보장돼야 한다. 생활의 질을 좌우하는 양질의 주거시설도 제공해야 한다. 외국인 노동자가 자꾸 죽거나 다치는 불행은 막아야 한다. 하지만 정부 대책이 농가와 지자체가 감당할 수준을 넘어선다면 실효는 없고, 어려움만 가중될 뿐이다. 근로자의 인권과 노동권을 높이면서도 농가의 부담도 덜어주는 유연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