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선수 자매' 과거 이야기로 촉발
아이돌 등 연예인 '폭투'도 줄이어
근본적 해결보다 사건처리 '급급'
해맑음센터 "실질적인 보호 해야"
스포츠계에서 촉발한 학교폭력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이른바 '폭투'가 연예계를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는 근간엔 제때 치료받지 못한 상처가 있다.
피해자에게 평생의 트라우마를 남긴 학교폭력의 폐해를 피해자 스스로 수면 위로 끌어올려 사회적 문제로 공론화했다는 데 의의를 가지면서도 과거 학교폭력 사안에 대해 치유와 회복을 등한시한 구조적인 문제가 피해자들의 개별적인 온라인 폭로로 이어졌다는 해석이 함께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학교폭력 미투 운동의 시작은 지난 7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여자프로배구 선수 자매에게 과거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게시글이 올라오면서다. 이후 프로배구와 프로야구 선수들에게 학창시절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호소가 잇따랐고 연예계로까지 학교폭력 미투가 번졌다.
여기에 수원의 한 중학교 졸업앨범 사진과 함께 여성 아이돌로부터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내용의 게시글이 올라오는 등 경기도 출신 연예인들의 학교폭력 미투도 줄을 잇고 있다. 글쓴이는 사귀던 이성 친구와의 관계에 대한 모욕적인 발언 등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했고, 여전히 안 좋은 소문 속에 살고 있다고 호소했다.
취재 중 만난 또 다른 학교폭력 피해자는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해 어머니에게 화를 분출하면서 가정 해체 위기를 겪었다.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지내는 가해자의 SNS를 보고 해당 피해자는 "우리 사회에 과연 정의가 있느냐는 물음을 던지게 했고, 더 큰 좌절감과 분노를 느꼈다"고 말했다.
학교폭력 피해 학생의 극복을 돕는 현장의 목소리는 명확하다. 교육 당국이 학교폭력 피해자와 가해자의 분리를 통해 트라우마를 조기에 극복할 수 있도록 돕고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바로 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는 근본적인 해결보다 학폭 사건을 '처리'하는 데 급급하다는 것이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부설 해맑음센터의 이정희 교사는 "SNS에 피해 사례를 직접 게시하기까지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한 엄청난 트라우마를 감내했을 것"이라며 "이번 기회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학교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좋은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교사는 "2019년 기준 학교폭력 가해 학생에 대한 시설은 5천곳이 넘는데, 피해 학생을 위한 전담지원기관은 고작 49곳뿐"이라며 "피해 학생들에 대한 실질적인 보호와 치유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성배기자 so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