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보살핌 대신 고통속 짧은 생 마감
갇힌채 심각한 영향 결핍상태 '가슴 먹먹'
가정학습등 출석 대체… 쓸모없는 매뉴얼
집앞 '나의 작은 관심'이란 문구 눈에 밟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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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재 인천본사 사회팀장
한 아이가 학교에 오지 않았다. 봄 방학이 끝나고 새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러 첫 등교하는 날이었다. 또래 아이들은 이른 아침 책가방을 메고 신발 주머니를 흔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부모들은 등굣길에 아이의 작은 손을 꼭 붙잡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선생님들은 새 학기에 등교하는 아이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교문 앞에서 아이들은 고개를 돌려 엄마, 아빠에게 고사리 같은 손을 흔들었다.

새 학기 등교 첫날이던 지난 2일 인천 중구의 한 초등학생 여자아이가 집에서 숨을 거뒀다. 온몸에 멍과 상처를 안은 채…. 학교에 오지 않았던 그 아이였다. 이름처럼 예쁘게 반짝였을 아이였다.

경찰은 이날 인천 중구 운남동 자택에서 딸 A(8)양을 숨지게 한 혐의로 B(27)씨와 그의 아내 C(28)씨를 긴급체포했다.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아동학대치사 혐의였다.

그렇게 또다시 한 아이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여덟 살이면 부모의 따뜻한 품에서 한창 어리광을 부릴 나이다. 가장 안전하고 포근해야 할 집에서 엄마와 아빠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고통스럽게 짧은 생을 마감했을 아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왔다.

A양의 부모는 2일 오후 8시57분께 자택에서 "딸이 숨을 쉬지 않는다"며 119에 신고했다. 경찰과 119구급대가 출동했을 당시 A양은 이미 심정지 상태였다.

경찰은 현장에서 B씨 부부를 긴급체포했다. 소방당국은 A양의 턱관절이 움직이지 않았고, 손가락 끝 등에서 사후 근육이 딱딱하게 굳는 강직 현상을 보였다고 전했다. 아이의 이마와 허벅지엔 멍 자국이, 양쪽 턱에는 찢어져 생긴 상처가 있었다. B씨 부부는 관련 혐의를 부인했으나 결국 구속됐다.

아이는 심각한 영양결핍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오죽했으면 출동했던 한 구급대원은 "아이의 두 볼은 움푹 파이고 팔다리가 말랐는데 '앙상하다'고 표현할 수도 없을 정도"라며 "언뜻 봤을 땐 유치원생만 했다"고 말한다.

세상을 등지기 하루 전날에 먹었던 점심밥이 아이의 마지막 끼니였다. 취재 과정에서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 온종일 먹먹했다. B씨 부부는 신고를 받고 온 경찰과 구급대원들에게 "편식이 심해 식사를 건너뛰는 경우가 많았다"고 진술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1차 부검에서도 숨진 아이의 위에는 음식물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이 아이는 집에만 갇혀 지낸 듯 보인다. A양을 봤다는 주민은 많지 않았다. 심지어 주변 편의점에서도 아이의 존재를 몰랐다. 왜 그런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A양의 집은 다세대주택이 밀집한 곳에 있다. 혼자 사는 사람이 많아 두 아이를 키우는 B씨 부부가 유독 눈에 띄었다는 일부 주민들을 후배 기자가 어렵게 만날 수 있었다. 한 주민은 "지난달 여자아이가 비명을 지르면서 자지러지게 우는 소리를 여러 차례 들었다"고 했다.

아이는 우리 사회의 안전망 밖에 놓여 있었다. 공교롭게도 A양의 집 근처에는 중구 제2청사와 영종동 행정복지센터가 있다. 중구청의 한 관계자는 "이 가정은 기초생활수급 등 복지 서비스 관련 사례 관리 대상이 아니어서 아동 학대 여부를 더더욱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코로나19가 번진 지난해 아이는 온라인 원격 수업에만 참여하고 등교 수업에는 모두 빠졌다. 학교 측은 가정 방문을 요구했으나 부모는 이런저런 이유로 거절했다. 지난해 11월 말에야 이뤄진 A양과의 전화 통화로는 학대 여부 등을 확인할 수 없었다.

교육부는 무단결석(미인정결석)하는 아동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매뉴얼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A양의 부모처럼 등교 대신 가정학습 등으로 대체하겠다고 하면 출석이 인정돼 이 매뉴얼은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된다.

아이의 집 앞에는 '나의 작은 관심으로 행복한 사회가 만들어집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나의 작은 관심'이란 문구가 눈에 밟혔다.

/임승재 인천본사 사회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