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면환승 원칙' 운운 엄포로 볼 수밖에 없어
'수도권 철도 연장' 인천·경기는 약자일뿐
정부의 신도시 정책 역행 같아 우려스러워
생활밀접 정책 시장 없을때 발표 이유 궁금


2021031401000553200027371
목동훈 인천본사 정치·경제총괄 팀장
1976년 2월18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서울시를 방문해 구자춘 시장으로부터 업무계획을 보고받았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서울의 인구 증가를 억제하고 증가율을 둔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이듬해 2월10일 서울시 연두 순시에서 임시행정수도 건설 구상을 밝혔다. 그는 "통일이 될 때까지 서울에서 고속도로나 전철로 약 1시간에 닿을 수 있는 곳에 임시행정수도를 만드는 것을 오래전부터 구상해오고 있다"고 했다. 역대 서울시장들이 한결같이 인구 증가 억제 대책을 내놓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서울에서 살기가 불편해야 하고 취업의 기회도 줄어들어야 한다"(김성배 제19대 서울시장)는 얘기까지 나왔다고 한다. 우리나라 인구가 서울에 집중되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는 늘 정부의 고민거리였다. 임시행정수도 구상은 오랜 논의 끝에 세종특별자치시 출범으로 이어졌고, 서울의 위성도시 취급을 받던 곳에는 하나둘씩 대규모 주택단지(신도시)가 조성됐다. 신도시를 조성하면서 서울과 연결되는 광역교통망을 확충하는 건 무엇보다 중요했다. 신도시 조성 목적이 서울의 인구 증가를 억제하고 주택난과 집값 안정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꿎은 인천과 경기지역에 신도시를 조성한 셈이다. 인천과 경기지역 전체를 옥죄고 있는 수도권정비계획법의 탄생도 서울의 인구 증가와 무관치 않다.

서울시는 지난달 10일 보도자료를 내어 "앞으로 도시철도 및 광역철도 연장은 직결 운영이 아닌 평면 환승을 원칙으로 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서울 지하철과 인천 또는 경기도 지하철을 직접 연결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서울에 들어오려면 환승하라는 것과 다름없다. 인천시민과 경기도민 입장에선 서울 경계 지점에서 지하철을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불편을 겪게 되는 건 명약관화다. 서울시는 보도자료에서 평면 환승의 장점을 늘어놓았다. 불편함 없이 빠르게 환승할 수 있고, 차량 고장 등 사고가 발생해도 전 노선의 운행 중단을 방지할 수 있으며,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의 근무 환경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 등 세계 많은 국가가 평면 환승 구조를 도입하고 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그럼에도 서울시가 평면 환승 원칙을 선언한 가장 큰 이유는 '서울교통공사의 적자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많은 지자체가 직결 연장을 요청하고 있지만 서울교통공사 적자 상태는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서울시는 "평면 환승 원칙은 모든 신규 철도 사업에 적용할 예정이며 직결 연장은 서울시 운영 원칙을 준수한 경우에만 검토할 예정"이라고 했다. 건설비는 물론 운행 비용까지 분담하는 지자체의 사업만 직결 연장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해당 지자체가 지하철 건설·운영비를 분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사업별로 협의하면 될 것을 '평면 환승 원칙'을 운운하는 건 엄포라고 볼 수밖에 없다. 수도권 철도 연장에 있어선 인천과 경기가 약자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또한 서울시의 평면 환승 원칙은 정부의 신도시 조성 정책에 역행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철도 연장을 계획하는 곳 상당수가 서울의 주택난 해결과 집값 안정을 위한 신도시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신도시 주민들의 서울 접근성을 향상하려고 지하철 연장 등 광역교통개선대책을 고민하는데, 서울시는 지하철을 갈아타라고 하니 말이다. 수도권 주민들의 생활에 밀접한, 이렇게 중요한 정책을 서울시장이 없을 때 발표해야 했는지도 궁금하다.

박남춘 인천시장은 지난 10일 쉐라톤 그랜드 인천호텔에서 열린 '제408회 새얼아침대화'에 연사로 나와 서울 중심의 '일극주의(一極主義)'로 인천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 예로 서울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석탄발전, 서울의 쓰레기를 묻는 수도권매립지, 한강 하구 지역인 강화도 일대로 떠내려오는 해양 쓰레기 등을 꼽았다. 2019년 수도권매립지 반입량 337만t 중 143만t(42%)은 서울에서 왔다. 인천에서 버린 쓰레기는 69만t(21%)이다. 서울시의 철도 평면 환승 원칙을 생각하면 이 또한 일극주의적 발상이 아닌가 싶다.

/목동훈 인천본사 정치·경제총괄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