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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비대면 사회에서 시각장애인들이 배제된 채 고립되어가고 있다. 지난 16일 수원시내 한 카페에서 한 시각장애인이 QR코드 전자출입명부 사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21.4.16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QR코드가 잘 보이지 않아 직원에게 얘기하면 '그럼 명부 쓰세요'라는 대답이 돌아와요. 잘 안 보여서 도와달라고 하면 '그럼 안경 쓰세요'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경증 시각장애인 이영애(67)씨)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코로나19 대유행이 2년째로 접어들었다. 사람을 마주했던 사회는 기술의 힘을 빌려 비대면 사회가 돼 간다. 혹자는 가까운 미래,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말한다. 비대면 사회가 돼갈수록 촉각에 의존해 세상과 소통했던 시각장애인은 무력해진다. 보이지 않던 것을 만질 수도 없게 됐다. 경인일보는 끝날 것 같지 않은 전염병 속에 사는 시각장애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시각장애인은 철저히 배제된 포스트 코로나

국내 코로나19 사태가 2년째 이어지고 있다. 비대면 사회가 익숙해진 오늘날 시각장애인들은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전국에는 25만3천55명, 경기도 내에는 5만3천728명의 시각장애인이 산다.

가는 곳마다 정부 방역지침에 따라 출입명부를 작성하거나 QR코드를 찍어 개인정보를 남겨야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해낼 수 없다. 지키지 않으면 벌금까지 물어야 하는 방역 의무를 이행하는 일마저 타인의 도움 없이는 힘들다. 눈이 보이지 않아 상대방이 마스크를 안 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덤이다. 비장애인이 당연했던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았다고 표현한다면, 장애인은 힘들게 지켜왔던 일상마저 송두리째 빼앗겼다.

경증 시각장애인 정창윤(36)씨는 "병원에 갈 때도 매번 QR코드를 찍어야 합니다. 그럴 때마다 직원분께 도움을 청해야 하는데 코로나19 사태로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기조차 쉽지 않습니다"라며 불편함을 호소했다.

한국웹접근성평가센터는 지난해 7월 '전자출입명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시각장애인 서비스 접근 조사'를 진행해 '열악' 진단을 내놨다.

시각장애인이 배제되고 있는 것은 방역에서만이 아니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그들이 설 곳은 없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건비를 절약하고자 하는 자본의 욕구는 자연스레 무인(無人) 시장을 키웠다. 여기에 코로나19 대유행이 맞물리면서 비대면 수요가 높아지자 키오스크(결제 가능한 무인단말기) 도입을 앞당겼다. 국내 키오스크 시장은 점점 몸집을 키우고 있다. NH투자증권 리서치본부 조사에 따르면 국내 키오스크 도입 추이는 2015년 20억 원 시장 규모에서 해마다 30억 원, 65억 원, 100억 원, 150억 원 등으로 늘고 있고 지난해는 220억원으로 집계된 바 있다. 이로써 국내 키오스크 시장 연평균 성장률은 61.5%에 달한다.

변화의 속도가 가팔라지자, 시각장애인은 사람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무인점포 이용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중증 시각장애인 최재영(가명·61)씨는 "키오스크 같은 것이 세상에 나오듯,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막상 눈이 안 보이니까 조작하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화한다고 말하는데 사실 저로서는 이러한 변화를 피부로 느끼기 어렵습니다"라고 말했다. 정창윤 씨는 "키오스크는 버튼이 터치로 돼 있는데, 결제 과정에서 바코드를 찾아 입력해야 하고 결제 수단도 일일이 터치로 정해야 해 혼자서는 이용이 불가능합니다. 음성 안내도 나오지 않아 시각장애인은 전혀 사용할 수 없습니다. 아이스크림 무인 판매점에 가야 할 때면 스스로는 불가능해 항상 딸아이와 함께 갑니다"라고 했다.

■ '눈 역할' 해줄 정보화 교육, 장비 부족 탓 엄두 못내

방역을 이유로 사회가 점점 더 비대면 사회로 모습을 바꾸면서 시각장애인의 시야는 더욱더 어두워지고 있다.

시각장애인이 점자를 배울 때 강사가 옆에서 손을 잡고 점자 하나하나를 만지며 설명해줘야 하는데, 대면 교육이 어려워지면서 학습 속도가 더뎌진 탓이다. 정창윤 씨는 "개인차가 있겠지만, 점자를 읽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쓰기는 노력에 따라 금방 할 수 있지만 읽기의 경우에는 감을 익혀야 하는 것이라서 시간이 더 오래 걸립니다. 저는 아직 점자 읽기를 다 익히지 못해 계속 연습 중입니다"라고 설명했다.

글자를 읽고 쓰는 점자 교육도 중요하지만,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 일상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기기 사용법을 알려주는 '정보화교육'이 중요하다는 게 시각장애인의 공통 목소리다. 점자를 못 읽어도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잘 사용하면 일상에 지장이 없을 거라고 많은 시각장애인이 말했다. 정부가 전 국민에게 지급한 긴급재난지원금을 받을 때도 기기 사용이 익숙지 않은 시각장애인들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이 정보화교육을 받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우선 정보화교육을 하는 시설이 많지 않다. 경기도시각장애인복지관이 도내 정보화교육시설 61곳을 대상으로 지난해 11월 26일부터 12월 29일까지 한 달여 간 정보화교육 유무를 조사한 결과 전체 38곳(62.3%)이 정보화교육을 안 하고 있다고 답했다. 정보화교육을 안 하는 이유로는 '참여자부족' 23곳(60.5%), '정보화기기 부족' 20곳(52.6%), '전문강사 부족 5곳(13.6%)' 순(복수응답)으로 답했다.

정보화교육 강사들은 시각장애인들이 정보화교육을 해주는 시설이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 참여도가 낮은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다시 말해 시각장애인은 정보화교육을 받을 수 있는지 모르고, 시설은 정보화교육을 받길 원하는 시각장애인이 없어 교육하지 않는 '미스매치'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는 사이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 간 정보격차는 심화되고 있다.

시각장애인 정보화교육의 질을 높이는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교육만이라도 받도록 하기 위해 다수의 시설은 정보화 기기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보화교육에 필요한 지원을 묻는 물음(복수응답)에 교육을 하지 않는 시설 38곳 가운데 86.8%인 33곳이 정보화기기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 밖에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강사교육'이 필요하다고 답한 곳은 23곳(60.5%), '전문강사'라고 답한 곳은 23곳(60.5%)이었다. 올해 1월 장애인 정보 접근권 보장을 위해 정책 제언을 한 경기도의회 송영만(민·오산1) 의원은 "장애인 정보권은 보장받기 어려워 더욱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정보화교육을 위한 정보화기기가 부족하다는 사실은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라고 했다.

2년째 정보화 수업을 맡고 있는 박정규 사회복지사(중증 시각장애)는 "정보교육을 받고 싶은 시각장애인은 교육 장소가 없어 못 하고, 교육 시설은 교육을 받으려는 사람이 없어 못 하는 게 현실"이라며 "이는 시각장애인 교육생이 몇 명 이상 모이지 않으면 교육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먼저 모든 시설에 정보화교육 체계를 만들고, 그다음에 시각장애인 교육생을 모집하는 홍보를 범정부 차원에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시각장애인이 우리 사회에 바라는 것 '목소리'

경인일보가 만난 여섯 명의 시각장애인들에게 어떠한 지원이 가장 필요한지 묻자 여섯 명 모두 "음성지원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음성지원이 되는 정보화교육, 음성지원이 되는 비대면 교육, 음성지원이 되는 키오스크가 그것이다. 교육을 받고 음식을 사고, 움직이고, 사람과 소통을 하며 살기 위해 그들은 '목소리' 지원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시각장애인 이씨는 "음성지원이 되는 프로그램을 컴퓨터나 스마트폰과 같은 기기에 설치하려면 돈을 내야 하는데, 개인이 내기에는 부담이 많이 큽니다. 정부가 지원 대상도 규모도 늘려줬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박 사회복지사는 "100만원가량 하는 음성지원 프로그램을 설치하려면 개인이 20%를 부담하고 정부가 나머지를 지원하는데, 신청자가 많아 대부분 못 받고 자부담 100%로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 1년에 딱 한 번만 신청을 받아 정보력이 약한 시각장애인들 다수는 신청시기를 놓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코로나19 사태에 적응하느라 사회적 약자를 돌보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그들을 포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정익중 교수는 "그동안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각자도생하느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못 챙겼다. 하지만 최근 포스트 코로나라는 말이 나온다는 것은 우리가 이제 어느 정도 적응을 했다는 것의 방증"이라며 "포스트 코로나에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가 배제되는 일이 더는 없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명종원기자 light@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