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한 곳은 가까운 비산1동 '비산시장'이었다. 전통시장을 끼고 있었던 이 동네서 15년 넘게 살았는데, 2019년 비산시장은 허물렸다. 그 자리엔 삼성 래미안을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희성촌도 비산시장도, 내 성장기가 담긴 마을 모두가 사라지고 지금은 높다란 아파트가 들어섰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려 해도 찾아갈 동네가 없다.
성장기 내내 가족은 전셋집에 거주했다. 여러 차례 집을 옮겼고 대개 4층짜리 빌라거나 2층 주택이었다. 집 주인이었다면 신축 아파트에 입주해 부동산 가격 상승의 달콤함을 맛봤겠지만 세입자였던 가족에겐 언감생심이었다. 서울의 오래된 위성도시 안양이 짓고 허물고 새로 짓기를 반복한 역사는 수도권 부동산 시장의 역사랑 포개진다.
짓고 허물고 새로 짓기를 반복하며 집을 소유한 사람은 시세차익 내지는 인플레이션에 준하는 자산 상승효과를 거뒀지만, 세입자 입장에선 짓고 허물고 새로 짓는 것은 이사를 가야 할 이유에 불과했다. 수십 년 같은 동네에 살았던 사람 몇을 아는데 집을 소유했는지 아닌지에 따라 자산이 천지 차이로 변했다.
어느덧 서른 중반에 다다르니 부모님 세대가 아니라 내 세대의 집 소유 열망이 이해가 된다. 집 한 채라도 있으면 큰 노력 없이도 시간에 따라 자산이 형성되는 반면, 처음 세입자로 시작한 사람은 자가 소유자로 올라서기가 힘들다. 임대주택 정책의 홍수다. 토지를 공공이 소유하고 건물값만 받는 식으로 임대료를 낮춰 수십 년 동안 거주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정책까지 나왔다.
수십 년을 임대주택서 살 수는 있을 것이나 수십 년이 지나 주택 소유자와의 자산 격차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무주택자도 주택을 소유할 수 있게 해주는 '사다리'를 만들어 주는 게 정책의 역할은 아닐까.
/신지영 경제부 기자 sj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