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도용 피해… 보험금도 못받아
"'수출 사기'는 한국무역보험공사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입니다."
용인에서 조명기구를 생산하는 B중소기업이 한국무역보험공사(이하 무보)의 보증을 믿고 수출을 했다가 사기 피해를 입었다면서 피해 보상을 주장하고 있다. 사연은 이렇다.
지난 2018년 B기업은 미국 기업인 S법인으로부터 LED 램프 수출을 주문받았다. 계약금도 없이 진행되는 수출이기 때문에 B기업은 무보에 해외기업신용조사를 의뢰했다.
무보는 무역 보험, 수출신용 보증, 수입 신용보증 등의 업무를 하는 기관으로 기업정보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서 신용정보 조사도 진행한다. 무보가 진행한 S법인의 신용조사 결과는 'E'였다. A~F 사이 등급을 받으면 거래를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의미로, A에 가까울수록 높은 신용등급을 의미한다.
정상 등급을 받았지만, S법인의 수상한 점은 신용 조사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S법인이 B기업에 보내온 기업 정보와 무보가 제공한 신용평가서를 비교해보니 사업자 번호는 동일했지만, 전화번호·대표자 번호·주소가 달랐던 것이다.
미국에서 LED 램프를 수입하겠다던 S법인은 명의를 도용한 허위 기업이었고, 결국 B기업은 26만3천100달러(약 2억9천만원) 상당의 물품을 보내 금전적 손해를 입게 됐다. 이뿐 아니라 무보의 신용조사를 거쳐 또 다른 기업에 46만8천달러(약 5억2천만원) 상당의 물품을 보냈다가 또 다시 수출사기로 고스란히 피해를 입었다.
S법인에 대한 수출 건에 무보가 설정한 보험액은 30만 달러였지만, B기업은 보험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B기업이 제기한 민사재판 1심에서 재판부가 피고(무보)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법원의 판단은 B기업에게 연락을 취해 온 S법인과 무보가 신용평가를 해 'E'등급을 부여한 회사를 동일하다고 인정할 근거가 없고, 국외회사의 대표자·전화번호는 자주 변경되기 때문에 무보 실무자가 신용평가 과정에서 S법인의 진위를 의심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B기업 측은 "수출하기 전에 무보 측에 의심스러운 점이 많다는 사실을 전했지만, '신용조사에서 한 번 걸러진 내용이니 괜찮다. 믿고 수출하면 된다'는 답변만 했다. 무보가 없었다면 이 수출을 처음부터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무보를 믿었는데 '수출사기'라는 이유로 보험금도 받지 못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항소심이 진행 중인 B기업 사건 외에 '수출사기'라는 공통 분모로 다른 업체들이 무보를 상대로 진행하고 있는 대법원 상고심은 2건이 더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무보 측은 "소송 중인 사건은 개별 내용을 언급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