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범죄 아닌 경우 경제적 능력따라 처벌
감당 가능한 죗값통해 범죄 막자는 논리
우리도 이제 충분히 논의 해볼만한 정책
있는 자는 죄를 지어도 형벌의 무게가 무겁지 않다. 비싼 돈으로 변호사를 수임하면 죄는 가벼워진다는 유전무죄의 논리. 죄가 있어도 무죄로 빠져나가거나 일부 유죄 판결로 실제 죄의 무게에 비해 작은 형벌을 받는다. 작금의 현실이다.
지난해 수원 소재 한 고시원에서 훈제계란 18알을 훔쳐 달아난 사건이 있었다. 이 40대 남자는 2평 남짓한 고시원에서 생활하다 배고픔에 훈제계란을 훔쳤다. 이른바 '코로나 장발장' 사건이다.
검찰은 이모(48)씨에게 징역 1년 6월을 구형했다. 이 사건은 언론을 통해 국민적 관심이 쏠린 사건이었다.
법원은 이씨에게 양형을 베풀었다. 하지만 과거의 범죄경력 때문에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이씨는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1년의 실형을 살았다.
훈제계란 18알을 훔쳐 먹은 죄로 징역 1년이라는 과도한 형벌의 무게를 짊어져야 했다. 이씨가 짊어진 형벌의 무게에 대해 그 누가 적당한 무게라 말할 수 있을까.
대권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재산비례벌금제'를 제안하고 나섰다. 재산비례벌금제의 핵심은 가난한 사람이 억울하게 과도한 형벌의 무게를 짊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형벌의 실질적 평등 효과를 낼 것이라는 주장과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는 의견이 충돌하고 있지만, 있는 자들의 책임을 더 높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관용을 베풀자는 게 이번 재산비례벌금제의 제안 취지로 이해된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더라도 형벌에 있어 그 책임은 각기 다르게 적용하고 있다. 특히 벌금형에 준하는 범죄에 대해서는 경제적 능력에 따라 차등 처벌하고 있다. 재산비례벌금제를 도입한 대표적인 나라는 독일이다. 형에 따라 '형기'를 정하면 이에 1인당 소득액을 곱해 결정한다. 경제적 여력이 없어 벌금을 내지 못하면 노역으로 대체한다. 핀란드와 스위스 역시 이미 100년 전부터 재산비례벌금제를 시행하고 있다.
죄에 대한 형벌의 기준을 각기 다르게 하는 것인데, 그렇다고 이들 나라가 범죄의 나라인가.
중범죄가 아닌 경우 경제적 능력에 따라 그 책임의 무게를 저울질해 처벌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처벌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 아닐까.
죄에 대한 처벌의 무게, 특히 벌금형의 경우 처지에 따라 그 무게는 다를 테니까.
우리나라도 재산비례벌금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이재명 지사가 제안한 재산비례벌금제를 놓고 경제력을 판단하는 '기준'이 문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경제력 파악이 어렵다는 이유 등은 핑계일 게다. 건강보험료를 부과하는 기준을 반영하면 해결되는 문제다.
이재명 지사가 제안한 재산비례벌금제는 한마디로 가난한 사람에게 헌법에 따른 처벌이 아닌, 그 사람이 짊어질 수 있고 감당할 수 있는 처벌을 통해 범죄를 막자는 게 제안의 취지일 것이고, 그게 헌법의 취지 아닌가.
인천에서도 생후 2개월 된 영아가 부모의 학대로 중태에 빠지는 사건이 있었다. 사건 이후 알려진 일인데, 희생된 영아의 엄마는 죄를 짓고 구속됐고, 아빠는 모텔을 전전하며 2개월 된 영아의 육아를 책임져야 했다. 그 희생된 영아는 사회에서 보듬어야 할 상황이었다. 엄마가 구속 전 영아의 육아를 책임지는 방안을 마련했더라면, 그랬다면 그 희생은 없었을 피해였다.
모든 이에게 평등하게 적용하는 죄의 무게가 아닌, 죄지은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죄의 무게로 처벌하는 '재산비례벌금제'. 이제 충분히 논의해볼 만한 정책이다.
/김영래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