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자산시장 '가상화폐'로 옮겨 붙었다
투기판 된 부동산시장 끼지 못한 MZ세대들
가상자산 보호 안된다고 해도 욕망 못 꺾어
인천미두취인소(仁川米豆取引所)는 1910년 조선총독부의 공식 허가를 얻은 후 초기에는 실제 쌀을 두고 거래를 했지만 1912년 이후부터는 거래량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쌀은 사라지고 '사겠다', '팔겠다'는 주문만으로 거래가 이뤄졌다. 일정한 날짜를 정해 놓고 그 기간 내에 쌀을 사거나 팔아 시세 차익을 얻는 방식인데, 언제나 돈을 잃는 사람만큼 따는 쪽이 생겨 '제로섬 게임'과 같았다. 이런 미두장을 현재의 증권거래소 시초로 보는 연구자들도 있다.
미두장이 성행하면서 적은 돈으로 한몫 챙긴 벼락부자가 나오기도 했고, 전 재산을 탕진한 이들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지금으로 치면 '대박났다'는 소문의 주인공은 특별한 부자가 아닌 지방에서 논, 밭을 팔아 올라온 농사꾼 아무개였다. 흔치 않던 이런 '성공 신화'는 입에서 입으로 보태지고 더해져 전국으로 퍼졌고 암울한 시대, 기댈 것 없는 이들에게 일확천금의 허황된 꿈을 안겼다. 전국에서 올라온 미두꾼들은 인천 미두장 인근에 방을 잡아 숙식까지 해결해가며 인생을 건 도박을 했다.
미두장은 당시 큰 사회적 문제였다. 1939년 11월19일자 동아일보는 미두장을 다룬 기획기사 '흥망의 환무 반세기'를 실으면서 인천을 이렇게 한마디로 표현했다.
'강보에 싼 인천의 어린아이도 합백(合百)과 투기를 안다'. 인천이 온통 미두와 관련한 투기장이었다는 얘기로, 여기에 나오는 합백은 공인받지 않은 사설 미두 도박장이다.
당시 신문을 보면 미두장에서 돈을 잃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거나 살인을 했다는 기사도 간간이 나온다. 희망 없는 시대, 투기꾼들은 불나방처럼 인천으로 모여들었다.
부를 축적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변하지 않는다. 국가가 여러 정책과 법률을 통해 이런 욕망을 적당히 억제시키며 합법적 투자로 이끄는 게 유일한 통제 수단이다.
이런 국가의 통제 수단이 제 구실을 못할 때 인간의 욕망은 그 틈을 비집고 나와 비정상적인 투기판을 만든다. 미두가 성행했던 1910년대도 그런 시대였다.
2021년, 부동산과 주식이 잡아 삼킨 대한민국의 자산 시장이 비트코인, 도지코인, 이더리움 등 이름도 생소한 가상화폐로 옮겨붙었다.
평생 벌어도 집 한 칸 장만하기 어렵고 노후가 막막하다고 절규하는 'MZ세대(20~30대)'가 주식과 가상화폐 등 자산시장 질서를 뒤흔들고 있다고 한다.
올해 1분기 빗썸·업비트·코빗·코인원 등 4개 거래소의 신규 가입자 250만명 가운데 MZ세대 비중은 63.5%에 달했다. 작년에 주식투자를 시작한 300만명 중 53.5%인 160만명은 30대 이하였다.
국가가 부동산 정책을 통제하지 못하게 되자 그 틈을 비집고 나온 인간의 욕망은 부동산 시장을 투기판으로 만들었다. 그나마 여기에 끼지도 못하는 MZ세대들이 투자와 투기의 경계선에 있는 각종 가상화폐와 주식에 비정상적인 광기를 보이고 있다. 정부가 가상자산 투자자는 보호 대상이 아니라고 엄포까지 놓았지만, 가상화폐에 대한 MZ세대들의 욕망을 꺾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기성세대들은 부동산 투기판으로, 젊은이들은 가상화폐와 주식시장으로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광기의 시대, 개항장 인천의 어느 미두판에서 대박을 쳤다던 그 농사꾼 아무개가 생각나는 요즘이다.
/김명호 인천본사 정치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