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중진 '홀대프레임 벌떼반격'으로 방어
책임당원 55% 영남 표 의식 안할 순 없지만
기득권·지역한계 극복 '노마드 정당' 준비를

요즘 야당가에 '도로 영남당' '도로 한국당' 논쟁이 점입가경이다.
서울시장 재보선에 압승한 다음 날 당내 초선 의원들이 '영남당' '꼰대당' 이미지를 벗자고 불을 지피고 나섰다. 외부의 '지적질'도, 누군가의 '훈수'도 아니었고 단지 탄핵 이후 선거 4연패의 악몽에서 벗어나 승리를 자축하며 내년 대선 승리까지 기세를 몰아가자는 충정으로 보였다. 들불처럼 타오를 것 같았던 기세는 하루도 못 넘기고 쥐도 새도 모르게 사그라들었다. 벌떼처럼 달려든 영남 중진들의 반격 때문이었다.
잠잠한 듯하던 논쟁은 6월 11일 열리는 당 대표 경선을 앞두고 다소 누그러진 모습으로 경선 밥상에 다시 올랐다.
처음엔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영남 때를 벗어야 한다"는 강성 발언을 쏟아내더니 이제 "영남 정당보다 더 큰 정당을 만드는 것이 정권교체의 지름길이다", "영남은 죄가 없다. '도로 한국당'이 문제"라며 슬쩍 꼬리를 내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 대표를 뽑는 유권자 성향이 영남에 치중돼 있다 보니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모양이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유권자 구성은 책임당원 70%에 일반 국민(여론조사) 30%로 돼 있다. 이 중 책임당원의 55%가 영남에 치중돼 있고,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당권 주자들은 '동래 파전 뒤집듯' 말과 표현을 살짝 바꾸고 있다.
분명 이번에 제기된 '탈영남' 논쟁의 본질은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고 변화의 시작일 텐데, 기득권을 쥐고 있는 영남 중진들이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느냐. 의석수 많은 게 죄냐"며 영남 홀대론으로 프레임을 씌워 버렸다.
영남은 누가 뭐래도 보수 정당의 뿌리이고, 야당의 지지기반이다. 전국 유권자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고, 정권 탈환의 튼튼한 지렛대이다. 그런데 그들은 당 대표 될 사람이 정권교체에 도움이 되는 사람인지 아닌지가 중요하지, 그 사람이 전라도면 어떻고 경상도면 어떻단 말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틀리지 않는 말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영남과 그렇지 않은 비영남 정치인 인식의 차이는 존재한다는 게 본질적인 문제다. 지역적으로 보면 영남은 국민의힘 공천만 받으면 어느 정도 당선이 보장돼 있고, 현재 지방 의회나 의원들의 분포로 봐도 야당 아닌 지방 권력의 여당이다. 그게 영남의 패권으로 치부되고, 그 패권 의식으로 꼰대 당의 근성이 나오면서 반작용도 생기는 게 현실이다.
주로 영남 이외에 정치적 자산이 없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지역구도와 소모적 갈등을 조장하고, 평소 잘 하다가도 전략적 사고를 못 해 망치는 게 바로 보수 정당의 지역적 한계였다. 그래서 과거 당 쇄신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정병국 전 의원도 한때 "노마드 정당의 길을 찾아 나서자"고 역설한 바 있지 않은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국민의힘은 이제 중도를 향해 새로운 대안을 찾는 노마드 정신과 같은 지혜를 가져야 한다. 대권 주자도 변변치 않은 지금, 지역과 기득권에 안주하지 말고 용광로처럼 무쇠도 녹일 통합의 정신으로 지역과 세대를 뛰어넘는 전당대회를 준비해야 한다. '성을 쌓는 자 망할 것이고 길을 내는 자 흥할 것'이라는 말이 노마드의 정신이다.
/정의종 서울취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