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경기도의 한 대형마트에서 무빙워크를 수리하던 21살 청년이 기계에 몸이 끼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청년은 고등학교 재학 중 승강기 관련 자격증을 취득해 취업에 나선 고졸 취업자였다.
두 청년의 죽음을 취재한 나는, 책임이라는 단어의 무게가 한없이 가벼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두 청년은 모두 하청업체 소속 직원이었다. 원청 측은 이들의 죽음에 하나같이 '책임'이라는 단어를 썼다. "책임을 통감한다"거나 "잘못이 있는 부분에 대해 책임지겠다"는 식이었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책임이라는 단어는 마치 요술봉 같다. 최근 광주광역시의 한 재개발 공사 현장에서는 철거 중인 건물이 도로 쪽으로 넘어지면서 승객을 태운 버스를 덮쳤다. 이 사고로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번에도 원청 측은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했다.
참 아이러니하다. 위에 언급한 사례 모두는 '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인 책임을 다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사고다. 그래서 어리석다.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책임은 다하지 않고, 그 결과에 따른 책임을 지겠다니 말이다.
그렇다면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금전적 보상을 하고, 민형사상 책임을 지면 그걸로 끝인 걸까. 공허한 메아리 같은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면 이 모든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한국에서 산업재해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는 882명이라고 한다. 이들의 죽음 뒤에도 분명 책임이라는 단어가 따라붙었을 것이다. 그래도 변화는 없었다. 책임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무책임할 수 있는 것인가.
/배재흥 기획콘텐츠팀 기자 jhb@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