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가족의 비위 의혹이 담겼다는 소위 X-파일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정작 X-파일의 실체는 오리무중이다. 그러나 이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으로 실체 없는 X-파일이 유력한 대선 예비후보인 윤 전 총장의 진로를 결정할 가늠자가 된 형국이다. 급기야 윤 전 총장은 22일 "출처 불명의 괴문서로 정치공작을 하지 말고 진실이라면 내용·근거·출처를 공개하기 바란다"는 입장문을 밝혔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출직에 나서는 공직 후보자는 투명하게 검증받을 의무가 있다. 공직 후보자의 능력과 인격이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이익에 부합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고위 공직자인 대통령 후보자에 대해서는 검증의 기준이 더욱 엄격하고 세밀해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의 상식이다. 윤 전 총장도 결코 예외가 될 수 없다. 하지만 검증은 반드시 민주적 절차와 수단에 의지해야 한다.

윤석열 X-파일은 민주적 검증의 원칙을 완벽하게 훼손하고 있다. 우선 실체가 없다. 작성자도 모르고 파일의 출처와 근거도 없다. 이런 허무맹랑한 자료를 정치권 몇몇 인사들이 돌려본 뒤 진실과 허위를 각각 주장하며 국민을 어둠 속에 가두고 있다. 이 X-파일이 합법적인 문서라면 'X'를 떼고 국민에게 공개돼야 맞다. 만일 실체 없는 허위문서라면 이는 국민을 대놓고 속이는 짓이자, 국민투표와 관련된 유권자와 피선거권자의 민주적 기본권리를 침해한 중대범죄로 엄벌해야 한다.

우리 민주주의 수준이 열악했던 과거에는 '공작'과 '사찰'로 얼룩진 선거가 비일비재했다. 16대 대선은 김대업의 허위 폭로로 대선 판도가 뒤바뀐 일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일이 가능하지 않은 시대이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윤석열의 파일을 차곡차곡 준비하고 있다"고 말해 X-파일 논란의 단초를 제공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검증을 받으라는 의미"라고 해명했다. 역풍을 우려했을 것이다.

디지털 세상에서 새로운 소통과 검증 수단을 가진 국민은 출처 불명의 괴문서에 속지 않는다. 하지만 대권 쟁취에 혈안이 된 정치권은 비정상적인 수단에 의지하려는 구태를 못 벗고 있다. 이럴 때 언론이 나서야 한다. 작성자와 출처를 포함한 X-파일의 실체를 국민에게 공개하는 취재 경쟁에 나설 것을 제안한다. 눈 뜬 국민을 대놓고 희롱하는 X-파일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수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