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포승줄 묶인 모습만 생생"
협의회 추산 피랍자 10만명 달해
피랍자 가족이란 이유로 고통도
정부에 유골송환·명예회복 요구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1년이 지났지만, 전쟁 중 북쪽으로 끌려간 가족들을 찾는 외침은 계속되고 있다. 북한 정권은 한국전쟁 당시 선전 등을 목적으로 남한에서 살고 있던 민간인들을 강제로 끌고 갔다. 이념이 촉발한 전쟁은 총을 들지 않았던 민간인들까지도 잔인하게 갈라놨다.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1950년. 당시 3살이었던 김모(74·파주)씨는 그해 7월을 마지막으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서울 신촌에서 살았던 김씨 가족들은 북한군 정치보위부가 아버지를 끌고 가던 당시 모습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김씨는 "조사받던 사람들이 서대문 형무소로 이송된다길래 할머니와 어머니가 보위부로 갔는데 멀찍이서 아버지가 끌려가는 모습만 볼 수 있었다"며 "아버지는 포승줄에 묶여 모자를 눌러 썼고 당꼬바지를 입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모(71)씨는 1950년 6월23일 지금의 부천 대장동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하씨는 어머니 태중에 있을 때 아버지와 생이별을 해야 했다. 당시 28세였던 하씨의 아버지는 그해 7월28일 북한에서 내려온 '완장을 찬 사람들'에게 불려 나간 뒤 소식을 듣지 못했다.
하씨는 "아버지를 찾으려고 피랍민 찾기 등 행사도 여러 번 참가했는데 찾을 수 없다는 회신만 받았다"며 "이후 통일부 인적사항을 조사해 보니 피랍과정에서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사단법인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가 보유 중인 납북가족의 채증 기록을 보면, 이천에서 면서기로 있었던 유모씨는 1950년 8월23일께 아침 동네 조카들이 누가 찾는다고 하여 나갔다가 내무서로 끌려간 뒤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어부였던 고양의 김모씨도 이웃의 밀고로 1950년 9월께 피난을 갔다가 돌아왔다는 이유로 피랍됐다.
협의회는 이렇게 한국 전쟁에서 피랍된 인원이 1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협의회 소속 인원은 700명가량으로, 경기도에는 225명이 소속돼 있다.
가족들은 부모와 형제, 배우자가 피랍됐다는 이유만으로 고통을 당해야 했다. 하씨는 "우리는 이데올로기의 희생자"라며 "희생자는 있는데 바뀐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수십 년째 정부에 피랍가족의 명예 회복, 유골 송환, 생사 확인 등을 요구하고 있다.
협의회는 "하루빨리 진실이 규명돼 북한 정권에 대한 책임, 문재인 정부의 공식 사과, 피해자의 명예회복, 유해 발굴, 재발방지책 등 후속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원근·이시은기자 lwg33@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