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기른 얼갈이 엎는데 불과 5분
"내 손발이 찢겨 나가는 것 같아…"
코로나에 외국인력 입국 10분의 1로
단체급식 중단… 가격도 크게 하락
5일 찾은 안성의 얼갈이 배추 농가 비닐하우스 안에는 두 달 전에 씨앗을 뿌린 얼갈이가 진한 초록빛을 내며 출하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날 농장주 고진택(53)씨는 애써 기른 얼갈이를 본인 손으로 갈아엎기 위해 비닐하우스를 찾았다.
이윽고 1m가 넘는 커다란 바퀴의 트랙터가 4m가량 폭의 비닐하우스를 가로 질렀다. 트랙터 뒤로 갈기갈기 찢겨 분해된 얼갈이 잔해가 흩날렸다. 두 달 기른 얼갈이가 식탁에 오르지 못하고 쓰레기로 바뀌는데 불과 5분 남짓 걸렸다.
고씨는 "자식 같은 얼갈이를 갈아엎으니 내 손발이 갈가리 찢겨나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도 주요 농작물 논밭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이유는 두 가지다. 코로나19로 해외 입국이 막히며 외국인 인력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는 데다, 농산물 소비 부진이 길어지고 있어서다.
5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19년 경기도 내 봄감자 재배면적은 2천5㏊였지만 코로나19 사태를 맞은 지난해엔 1천641㏊로, 올해엔 1천511㏊로 494㏊(24.6%) 줄었다. 서울 여의도 면적(2.9㎢)의 1.7배에 달하는 크기다. 같은 기간 양파는 217ha(44%), 마늘은 126ha(14.3%)가 각각 줄었다.
감자, 마늘, 양파 등 밭작물은 4월에 파종을 시작해 6~7월 장마철 직전에 본격적으로 수확하는데 일손이 달려 밭을 갈아엎는 농가가 속출하고 있다. 다 큰 배추를 수확할 외국인 노동자 일당이 8만~9만원에서 20만원까지 치솟으면서 올 여름 1만6천㎡ 규모의 밭 절반이 이렇게 없어졌다.
지난해 경기도 농업인 3명 중 1명(11만2천49명)은 65세 이상일 정도로 고령화가 심각했지만 올해 전국 농가에 배치될 예정이었던 외국인 1만1천명 중 현재까지 입국한 인력은 채 1천명이 안 된다.
외국인 인력 공백이 커지면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설문조사에서도 작물재배업 농가 67.2%가 '지난해에 비해 인력 수급이 어렵다'고 말했다.
여기에 학교·기업 등 단체 급식 중단으로 소비 부진까지 겹치면서 봄감자 가격은 지난 2019년 ㎏당 1천628원에서 지난해 1천179원으로, 올해 1천141원으로 2년간 449원(27.5%) 떨어졌다. 마늘 가격 역시 지난 2019년 ㎏당 4천255원에서 지난해 3천767원으로 488원(11.5%) 떨어졌다.
엄진영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당분간 외국인 근로자 입국 지연이 불가피한 만큼 도시 유휴인력 알선을 강화하고 기존엔 취업이 제한됐던 국내 체류 외국인들의 취업을 다양하게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여진기자 aftershock@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