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스쿨존 '급정거 아찔현장' 등골 오싹
오래전 사고기억 생생 이런게 트라우마인가
민식이법이 시행중인데도 여전히 잦은 사고
당한 가정의 삶은 풍비박산… 꼭 안전운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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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재 인천본사 사회팀장
걸어서 출근하던 길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날씨가 후텁지근했다. 등줄기에선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뜨거운 콧김이 마스크를 뚫고 안경을 뿌옇게 했다. 무거운 발걸음을 잠시 멈췄다. 송골송골 맺힌 입 주변을 손등으로 쓱 한번 닦아냈다. 그러곤 다시 발길을 재촉하려던 순간이었다.

'끼익-!' 눈앞에 아찔한 광경이 펼쳐졌다. 길가에 주차된 차량들의 틈에서 한 꼬마가 눈 깜짝할 사이에 이면도로 쪽으로 튀어나왔다. 달려오던 차량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급정거했다.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듯했다. 등골이 오싹하다는 게 이런 걸까. 정신이 번뜩 들었다. 차량은 아이 바로 앞에서 간신히 멈췄다. 천만다행이었다. 하마터면 큰 사고가 날 뻔했다. 책가방을 멘 것이 근처 초등학교에 다니는 듯했다. 꼬마도 많이 놀란 것 같았다. 얼어붙은 듯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못했다. 차량 운전자도 식은땀이 났을 것이다. 꼬마는 주변을 두리 번 대더니 이내 학교 쪽을 향해 줄행랑을 쳤다. 불과 며칠 전에 겪었던 일이다. 여러 개의 골목과 이어진 이 도로 바닥에는 '어린이보호구역'이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제한속도 30'이란 표시와 함께….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그 꼬마만 했을 때였다. 등굣길에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또래 아이가 차량에 치여 숨지는 사고를 목격했다. 끔찍했다. 주변에서 달려온 어른들도 고개를 내저었다. 손을 쓸래야 쓸 상황이 아니었다. 어린 마음에 너무 무서워 학교로 도망치듯 뛰어갔다.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이런 걸 '트라우마'라고 하는 걸까. 동창 모임 때 당시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불의의 사고로 사랑하던 아이를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만약 그 아이가 사고로 목숨을 잃지 않았다면, 우리처럼 중년의 나이에 한 가정을 일궜을 것이다. 이런저런 넋두리에 친구들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올해 학기 초였다. 지난 3월 인천 중구에서 초등학교 인근 횡단보도를 건너던 4학년 여학생이 화물차에 치여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고가 났다. 지난해부터 이른바 '민식이법'(개정 도로교통법 및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 중이다. 스쿨존에서 운전자의 안전의무를 강화한 이 법의 취지가 무색해 보였다. 인천시는 인천경찰청, 인천시교육청, 도로교통공단 인천지부 등 관계기관과 함께 머리를 맞댔다. 사고가 난 해당 학교의 주변 도로에는 화물차 통행이 부분적으로 제한됐다. 또 과속·신호위반이나 불법 주정차를 단속하는 폐쇄회로(CC)TV 확충 등 스쿨존 교통안전 강화 대책이 나왔다.

경인일보는 지난 8일 인천지방법원의 한 법정에서 진행된 재판을 비중 있게 다뤘다. 두어 달 전에 인천 서구에서 어린 4살 딸과 함께 유치원에 가던 어머니를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치어 숨지게 한 운전자의 첫 재판이었다. 아내를 떠나보낸 충격에 남편은 재판에 나오지 못하고 아우가 대신 출석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피해자 측 의견서를 읽어내려갔다. "형수님은 둘째 조카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브레이크를 밟지 않은 피고인 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며 울먹이던 그는 "둘째 조카를 걱정하며 두 눈을 감지도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했다. 엄마를 잃은 두 아이의 이야기에 가슴이 더욱 아렸다. 그는 "첫째 조카는 엄마를 죽인 사람은 어디 있냐면서 용서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아직 어린 둘째 조카는 엄마가 언제 오는지 계속 묻고 있다"고 전했다. 당시 사고로 둘째는 수술 후에도 걷지 못하고 심신 불안으로 상담 치료를 받는다고 한다. 그는 "형을 비롯한 우리 가족은 아이들을 챙기느라 눈물을 흘릴 겨를조차 없다"며 가해자를 엄벌해 달라고 호소했다. 행복했던 한 가족의 삶이 그렇게 무너져 내렸다.

전국 자치경찰제가 이달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인천시 자치경찰위원회가 내건 10대 주력 과제 중 핵심은 '어린이 교통안전'이다. 두말할 나위 없다. 꼭 그렇게 돼야 한다.

/임승재 인천본사 사회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