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보다 방송만 본 골퍼, 필드에선 실수만
번지르르한 말 한 두번은 그럴듯하게 들려
말로만 떠들다 실력 입증못해 신뢰잃는 것
세상사 그렇듯 흉내만 내다 실전선 탄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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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호 인천본사 디지털취재팀장
"프로 골퍼는 생각하는 대로 아마추어는 걱정하는 대로 공이 간다." 우스갯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골퍼들 사이에서는 "그러니 연습 좀 해"라는 핀잔의 의미나 "프로가 아니니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즐겁게 라운딩하자"는 말로 쓰인다. 레슨 방송만 열심히 보면 골프 실력이 늘어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주 드물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아마추어가 있긴 하다. A가 그런 유형이다. A는 골프에 대한 열정, 상식, 장비 어느 것 하나 결코 남보다 뒤지지 않는다. 굳이 A의 단점을 꼽으라고 한다면 "왜 필드에만 나가면 공이 본 데로 안 가고 아니 친 데로 가는지 알 수 없다"는 불만을 쏟아내는 것이다.

A는 시간 날 때마다(일부러 시간을 내는 경우가 더 많지만) 또는 퇴근 후 밤늦은 시간까지 유튜브 골프레슨 채널을 3~4개 돌려 본다. 경기 중계방송도 빼놓지 않는다. 외국에서 개최하는 PGA와 LPGA 프로골프대회는 시차 때문에 국내에서는 보통 금·토·일·월 새벽에 중계방송한다. 골프라면 누구보다 열정적인 A가 극적인 중계방송을 놓칠 리 있겠는가. 주말 새벽마다 중계방송을 보면서 프로들의 스윙연습을 분석하고 나면 못 잔 잠을 자느라 낮에는 연습장에 갈 시간이 없을 정도다.

A에게 연습장은 라운딩 전날 몸 푸는 정도이지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이미 무장된 스윙이론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라운딩 전날 A는 모처럼 연습장을 찾아 한 시간 타석이용권을 끊는다. 지난 주말에도 중계방송을 보면서 완벽한 자세를 보여준다는 로리 맥길로이의 스윙을 면밀히 분석한 A. 드라이버 연습만 제대로 하면 나머지 골프클럽 스윙은 너무 쉽다는 A는 "역시 로리 폼이 정석이야"를 연발하며 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드라이버만 잡고 흔들어 댄다.

다음 날 골프장을 찾은 A는 얼굴에 선크림을 꼼꼼히 바르고, GPS 거리측정 앱이 탑재된 최신 전자 손목시계를 차고, 요즘 유행한다는 C사의 옷으로 차려입고, 고가의 T사의 12개들이 골프공 한 상자를 손에 들고 의기양양하게 1번 홀에 등장한다. A는 동반자들을 향해 속으로 혼잣말을 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너희, 오늘 다~ 죽었어."

결과는 어땠을까. A는 전날 폭풍 연습한 로리의 멋진 폼을 연상하며 첫 드라이버 티샷을 날렸지만, 30m도 채 날아가기 전에 바로 옆 왼쪽 숲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른 시간이라 아직 몸이 덜 풀렸나"라고 생각한 A는 왼쪽으로 날아간 공을 의식해 오른쪽으로 몸을 살짝 돌려 공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벌타를 받고 3번째 티샷을 한다. 공은 처음보다 멀리 날아갔지만, 이내 오른쪽 숲으로 사라져 버렸다. A는 이후 샷을 할 때마다 "왜 이러지"를 연발한다. 18홀을 마친 A의 점수는 점수라고 얘기하기 민망할 정도다. "다~ 죽었어" 했던 바로 그 '너희'로부터 호구가 돼 집에 돌아오는 길, A는 또다시 굳게 다짐한다. "레슨 방송을 더 열심히 봐야지…."

모든 아마추어가 A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추어 중에서도 프로 못지 않은 실력을 갖춘 골퍼도 있다. 요즘 젊은 층에서 골프가 유행하면서 유튜브를 비롯해 케이블 방송에서도 유명 인사나 연예인이 출연하는 골프방송도 늘고 있다. 유튜브 방송에서 유명 프로골퍼나 연예인과 함께 라운딩하며 대화하는 형식의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개그맨 김국진은 프로 선수 못지 않은 실력을 보여준다.

연습장에서 30분 레슨받는 것과 레슨방송 3시간 보는 것, 어느 것이 실력을 쌓는 방법일까. 혹시나 "에어컨 켜놓고 방송을 시청하는 게 연습하는 것보다 낫다"고 하는 골퍼라면 당장 중고장터 앱에 골프클럽을 내놓기를 바란다. 1965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골퍼로 선정된 벤 호건은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내가 알고, 이틀을 연습하지 않으면 갤러리가 알고, 사흘을 연습하지 않으면 온 세계가 안다"는 말을 남겼다. 세상 모든 일이 이와 다르지 않다. 번지르르한 말은 처음 한두 번은 그럴듯하게 들린다. 말로만 떠들다 실력을 입증 못해 신뢰를 잃는 것은 순간이다. 프로처럼 말하고 꾸미면 무엇하나. 정작 실전에서는 "왜 이러지"를 연발하는데.

/이진호 인천본사 디지털취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