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부터 톨게이트 부스를 지킨 한 수납원이 직원식당으로 바쁜 걸음을 옮겼다. 미리 차린 음식을 먹기만 해도 넉넉하지 않은 시간. 웬일인지 식당 안은 썰렁한 기운만 감돌았다. 따끈한 밥을 지어야 할 전기밥솥의 콘센트는 빠져 있었고, 열기를 내뿜으며 국을 끓여야 할 가스레인지 화구는 입을 꼭 다문 채였다.
고작 30분 뿐인 점심시간… 식사에 뒤처리까지 촉박
컵라면·즉석밥 등 간편식으로 때우고 복귀하기 일수
이 수납원은 몸에 밴 듯 냄비에 물을 받아 가스레인지 위에 올렸다. 그리곤 사발면을 뜯었다. 전자레인지 안에 즉석밥을 넣고서는 냉장고를 열어 김치를 꺼냈다. 이날 메뉴는 컵라면과 즉석밥 그리고 김치가 전부였다. 식당 한편에 앉아 수저를 들기까지 걸린 시간은 10분 남짓. 그는 뜨거운 면을 후후 불어가며 먹었다. 남은 국물에 밥도 말았다. 8분. 그가 점심을 해치우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다.
어느새 남은 시간은 10분. 그는 서둘러 설거지를 끝내고, 화장실로 가 이를 닦았다. 영업소 뒤편에서 담배도 한 대 꺼내 물었다. 연락 온 사람은 없는지 휴대폰을 잠시 꺼내 보기도 했다. 그에게 주어진 30분은 잠시 타올랐다 꺼진 담뱃불과 함께 끝이 났다.
한국도로공사서비스 소속 수납원인 이들의 식사 시간은 교대 근무 특성상 촉박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컵라면으로 대충 때우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불과 지난달까진 따뜻한 밥과 국물, 4가지 반찬으로 제대로 한 끼를 챙겨 먹었다고 한다.
이 영업소에는 6월까지 '환경조리 근무자'가 따로 있었다. 수납원들이 먹을 식사를 준비하고, 영업소 청소를 담당하는 직원이다. 그런데 4월 말과 6월 말에 걸쳐 전국 영업소에서 일하던 환경조리 근무자 364명 중 44명이 일을 그만두게 됐다. 일부는 계약기간 만료, 일부는 자진 퇴사했다는 게 도공서비스 측 설명이다.
도공서비스는 환경조리 근무자를 충원하는 대신 지난 5월부터 3개월간 '영업소 환경조리 시범운영'에 돌입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환경조리 근무자가 하던 일을 영업소 수납원들이 나눠 하라는 취지다. 이러한 결정에 수납원들은 개인 도시락을 준비하거나, 영업소 인원에 따라 최대 60만원까지 지원되는 부식비로 식사 준비를 하게 됐다. 또, 교대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해 영업소 청소도 해야 한다.
갑작스럽게 환경조리 근무자의 공백이 생긴 영업소 수납원들에게 컵라면은 '최선의 선택'에 가까웠다. 고속도로 영업소는 보통 외진 곳에 위치한다. 식당을 가거나 배달 음식을 시켜먹기 어려운 환경이다. 점심시간도 30분이어서 음식을 조리할 여유는 더더욱 없다. 부식비는 영업소 인원 30명 기준 매달 60만원이 지급된다. 한 명당 2만원 꼴이다. 수납원은 한 달 13~22끼를 먹는데, 최소로 잡아도 매끼 사용할 수 있는 부식비는 1천500원 수준이다.
도공서비스 "설문조사·노사협의 통해 운영방식 결정"
현장에서 만난 한 수납원은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당황스럽다. 밥을 가지고 이런다는 게 너무 서럽고, 매일 허겁지겁 먹다 보니까 먹을 땐 배가 부르지만, 돌아서면 금방 (배가) 꺼진다"고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또 다른 수납원은 "2019년 수납원들이 한국도로공사 자회사로 정규직 전환이 됐을 때, 환경조리 근무자들은 여전히 계약직 신분이었다"며 "자진 퇴사한 근무자 중에는 계속되는 단기계약에 지쳐 나간 분도 있다. 회사가 꼭 필요한 인력도 줄이려고만 하다 보니 직원들의 기본적인 업무 환경은 계속 나빠진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도공서비스 관계자는 "환경조리 근무자는 정원 외 인력이다. 계약기간 만료로 19명, 개인 사정으로 25명이 그만둔 것"이라며 "현장 이야기는 전해 듣고 있다. 이달 말까지 시범운영을 한 뒤 설문조사와 노사 협의를 통해 환경조리 근무자 관련 운영 방식을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