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인 규모 병원에 다니는 직원 A씨는 의사로부터 계속된 폭언과 두 차례 걸친 폭행으로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 병원에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했지만, 별다른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 A씨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전신 통증 등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데, 병원은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하면 실업급여가 인정될 가능성이 낮다는 의견을 제시하며 원만한 합의를 종용했다. A씨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퇴사를 고민하게 된 것인데, 퇴사해도 실업급여를 받지 못한다니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사단법인 직장갑질 119는 A씨처럼 구직급여를 빌미로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는 등 구직급여 수급 요건을 둘러싼 갑질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8일 밝혔다.

구직급여는 흔히 실업급여라 부르는데, 퇴사한 노동자가 일정한 기간 고용보험에 가입하고 퇴사 사유가 수급 자격 제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아야 받을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수급자격 제한 사유는 ▲개인 사정으로 노동자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거나 ▲노동자에게 중대한 귀책사유가 있어 해고 또는 권고사직한 경우 등 노동자가 선택했거나, 노동자 책임으로 퇴사한 경우 구직급여를 받을 수 없다.

다만, 노동자 자발적인 퇴사여도 임금체불이 있었거나 직장 내 괴롭힘 등을 당하는 등은 수급자격이 인정된다. 그러나 직장 내 괴롭힘 입증을 피해 노동자가 직접 해야 하면서 노동청과 경찰 등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데다 A씨처럼 합의를 종용하는 경우도 빈번하고 직장갑질 119는 설명했다.

실제 25일 규모 회사에 다니는 B씨는 회사에서 3년간 왕따를 당하다 결국 퇴사를 결정했는데, 무시 등 법망을 피하는 갑질로 딱히 입증할 자료가 없는 상황이다. 회사도 B씨가 이 같은 문제를 건의한 적이 없어 구직급여를 처리해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또한,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해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구직급여 수급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더욱이 구직급여 수급 요건에 충족해도 이직확인서를 거짓으로 기재하도록 노동자를 종용해 구직급여 갑질을 일삼는 회사도 있다.

금융업 종사자 C씨는 회사의 경영상 이유로 인한 퇴사로 보험상실신고를 회사에 요청했지만, 인사팀 담당자는 퇴직금을 포기하면 보험상실신고를 제대로 해주겠다고 했고, 결국 C씨는 자발적 퇴사로 신고했다.

이처럼 이직확인서를 거짓으로 기재하면 고용보험법에 따라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 처분이 내려지는데, 실제 과태료 부과 건수는 턱없이 적은 실정이다.

최근 5년간 근로복지공단이 피보험자격 확인청구 건수는 평균 2만6천649건인데, 과태료가 부과된 건은 평균 1천355건으로 5%에 불과했다.

이에 직장갑질 119는 원칙적으로 비자발적 퇴사자에게만 수급자격을 인정하는 것에서 나아가 자발적 퇴사자를 포함한 모든 퇴사자에게 수급자격을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당면한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개선도 촉구했다.

이직확인서 작성 권한을 노사에 균등하게 분배하고 직장 내 괴롭힘으로 퇴사한 경우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노동자의 증명 책임의 완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정부지원금 중단 사유에 '자진 퇴사 강요' 등을 추가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혜인 직장갑질 119 노무사(법무법인 여는)는 "사용자가 이직확인서를 어떻게 기재하느냐에 따라 실업급여 지급 여부가 달라지는 현행 구조에서는, 사용자가 마치 자신이 베푸는 시혜처럼 실업급여제도를 이용해 직장 내 괴롭힘을 가할 수 있으므로 이직확인서 작성권한을 사용자와 근로자 모두에게 부여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현정기자 god@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