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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전국장애인거주시설 부모회 회원들이 상복을 입은채 보건복지부 앞에 몰려갔다. 이들은 정부가 발표한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에 부당함을 호소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장애인거주시설 부모회 제공

이달초 정부의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이 발표된 후(8월11일자 9면 보도=복지부 다시 찾은 장애인 부모들 "탈시설 하려면 안락사 허용하라") 중증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반발이 심화되고 있다.

장애인 부모들이 전국 단위의 단체를 결성해 본격 행동에 나선 것은 물론 치부로 보일수 있는 개인 가정사까지 공개하며 로드맵의 부당함과 불합리성을 호소하고 있다. 
동네 이웃들의 끝없는 멸시와 민원… 가정 활동 보조인도 외면
응급실 전전하는 상황에도 친척집에 잠깐 맡기는 것도 '불가능'
제압 어려워진 자녀… 머리로 받고 머리카락 잡아끌기도 '공포'
시설 폐쇄위기에 온가족 사실상 실직위기 "살얼음판 걷는 기분"
로드맵은 '장애인거주시설을 이용하는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로 정착할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지원하고자 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한다. 현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로 '탈시설 자립지원'으로 대표되며 장애인의 인권신장 및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장애인 탈시설화 이면에 중중장애인에 대한 현실적 한계가 존재하고, 중증장애인 부모들은 이를 공론화시켜 이제라도 탈시설 로드맵을 바로 잡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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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전국장애인거주시설 부모회 회원들이 상복을 입은채 보건복지부 앞에 몰려갔다. 이들은 정부가 발표한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에 부당함을 호소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장애인거주시설 부모회 제공


37세의 지적장애1급 아들을 둔 A씨. A씨 집 냉동실에는 독을 제거하지 않은 복어가 있다.
언제부턴가는 수면제도 모으고 있다. 감당할수 없는 현실때문이다. 아들이 어쩌다 밖에 나가면 112신고가 접수되곤 한다. 산책을 하려던 것 뿐인데 동네아이들이 따라다니며 놀려대고 엄마인 A씨는 간식거리를 잔뜩 사들고 동네에서 고개를 숙여야 한다. 시설입소대기를 몇 년이나 기다렸지만 중증발달장애가 있어서 받아주는 시설이 적다. 그나마 있던 시설도 탈시설화로 축소되고 신규 허가도 안난다하니 허탈하다. 입소할수 있다는 희망조차 사라졌다. 

A씨는 말한다. "시설대기자인 가정을 방문해 조사해본 적이 있나? 아이들을 시설에 보내는 것이 버리는 것이라고 누가 감히 그런 말을 할수 있나. 중증인 지적·자폐아들은 가정에서 활동을 돕는 활동보조 선생님들도 돌봄을 외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설축소만 강행하는 입장을 이해할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B씨는 24세의 중증발달장애 딸을 둔 엄마다. 그는 4번의 수술을 했다.
수술 당시 딸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 남편은 수술동의서에 사인만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B씨는 친정엄마가 사망했을 때는 빈소를 지키지 못했다. 시설에 입소를 못해 딸아이를 돌봐줄 곳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커뮤니티 케어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우리 국민들의 장애인에 대한 의식수준을 안다면 이런 법안을 하면 안된다"고 주장한다. 

어느 날은 B씨가 딸과 목욕탕에 갔다. 그곳에서 그는 '장애가 있는 아이를 왜 목욕탕에 데리고 왔느냐'며 항의를 받았다. 양육하며 겪는 멸시와 민원은 책 한권을 쓰고도 남는다는게 B씨 얘기다. 남편이 뇌출혈로 응급실을 전전할때 어쩔수 없이 친정오빠에게 맡겼다가 딸이 자해하고 정서적 불안감을 보여 결국 친정과 시댁이 다투는 문제가 발생했다. 

딸은 목에서 피가 날때까지 손으로 자해를 하고 못하게 하면 상대방을 공격한다. 어릴때는 감당이 됐지만 20대가 되고선 제압하기 버거운 상황이다. 딸이 머리로 B씨를 헤딩하면 두개골이 두 조각나는 느낌이고, 머리채를 잡아 끌려가는 일도 겪었다. 사랑스럽던 딸이 공포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딸을 더이상 품을 수 없어 장애인거주시설에 의존했고, 그곳에서도 TV, 창문도 박살내고 자해도 했다. 하지만 사례관리를 통해 간호사, 작업치료사, 사회복지사, 영양사까지 나서 돌봤다. 잘 적응해 살고 있는데 탈시설이 말이 되나? 이런 아이를 활동보조인이 맡아줄지 의문이다"고 전한다.

30대 중증발달장애 아들을 둔 C씨는 몇년전 가족이 모두 실직 위기에 놓였다.

아들을 돌봐주던 장애인시설이 잠시 폐쇄 위기에 놓여 온종일 가정에서 돌봐야 했다. 여성사업가로 잘나가던 C씨는 남편이 먼저 회사를 그만뒀고, 감당이 힘들자 대학생이던 딸도 휴학을 결심했다. C씨는 생계를 위해 어쩔수 없이 회사로 나갔지만 하루하루 가족들이 불안정해 하는 아들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사업을 접어야 하나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다행히 시설이 정상화돼 일상으로 돌아갔고, 아들도 안정을 찾았다. 그러나 C씨는 또 예전과 같은 상황을 겪게 되진 않을까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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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전국장애인거주시설 부모회 회원들이 상복을 입은채 보건복지부 앞에 몰려갔다. 이들은 정부가 발표한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에 부당함을 호소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장애인거주시설 부모회 제공

상황이 이렇다보니 중증장애인 부모들이 모여 만든 전국장애인거주시설 이용자부모회는 '탈시설 로드맵을 실행하려면 중증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에게 안락사도 함께 허용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들은 '탈시설 정책은 장애인 가족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악법 중에 악법'이라고 주장한다. 무리한 탈시설 입법을 즉각 철회하고,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1·7·18조에 따라 대다수 발달장애인들의 권리가 보호되는 정책을 재작성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장애인 부모들이 현실적으로 수긍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이런가운데 오는 17일 중증장애인 부모들이 김부겸 국무총리를 면담키로 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광주/이윤희기자 flyhig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