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가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희생된 월미도 주민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비를 세우기로 했지만, 위령비 문구에 '미군'을 명시할지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자 시민단체가 반발하고 나섰다.
市, 민간인 가해 주체 적시 불명확
시민단체 "문구 삭제땐 은폐·조작"
23일 경인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인천시는 중구 월미공원에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비'를 건립하고 내달 말께 제막식을 가질 예정이다. 인천시는 관련 행정 절차를 거의 마무리했으며, 위령비 제작에 들어갈 예정이다.
인천시는 지난 5월 말 작성한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비 제작·설치 계획'에서 '한국전쟁 당시 미군 폭격으로 무고하게 희생된 월미도 민간인 피해자의 넋을 기린다'고 위령비 추진 목적을 설명했다.
또 인천시는 '삶의 터전이 전쟁의 전략적 요충지가 됨에 따라 혹독한 피해를 입은 분들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전쟁의 실상을 후대에 알릴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한 목적도 밝혔다.
하지만 인천시는 위령비 문구에 가해 주체인 '미군'을 명시할지 아직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러한 기류를 감지한 인천 지역 시민단체들은 이날 오전 인천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위령비 건립을 집행하고 있는 인천시 보훈과에서 폭격 가해 주체인 미군을 위령비 문구에서 의도적으로 삭제하고, 월미도 폭격사건 주체를 지우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역사적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은 또 다른 은폐고 조작"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비슷한 미군 폭격사건이 일어난 지역에 위령비가 세워졌는데, '미군 폭격'이라는 역사적 진실을 담지 않은 곳은 없다"고 지적했다.
과거사委 집단희생 결론 내용 요구
"원만히 협의해 제막식 거행 노력"
정부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8년 '월미도 미군폭격사건 진실규명결정서'에서 '월미도 거주 민간인들은 한국전쟁 시기인 1950년 9월10일 인천시 월미도 마을에 가해진 미군의 폭격으로 집단 희생됐다'고 결론을 냈다.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을 닷새 앞두고 상륙 전 사전 정지작업을 위해 미군이 월미도 일대를 폭격한 이 사건으로 월미도 주민 100여 명이 희생됐다. 당시 과거사위는 이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을 결정하면서 '미국과의 협상(한미 공동 조사와 공동 책임)', '위령 사업 지원', '월미도 원주민의 귀향 지원' 등을 권고했다.
인천시 관계자는 "월미도 원주민들로 구성된 귀향대책위원회는 내달 중 제막식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고, 시민단체들은 과거사위원회가 권고한 내용을 위령비에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며 "원만히 협의해서 위령비를 건립하고 제막식을 거행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