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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지법 즉결법정. 수원시 광교 하동 수원법원종합청사 정문에서 왼쪽 모퉁이에 즉결법정과 바로 통하는 출입구가 있다. /이시은기자 see@kyeogin.com

9월13일은 대한민국 사법부가 탄생한 법원의 날이다. 일반 시민들이 법원을 손쉽게 찾는 경우는 경매 또는 부동산 등기 업무를 보러 올 때다. 형사 법정은 엄숙하고 무서운 곳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형사 법정 가운데 가장 문턱이 낮은 곳, 다시 말해 삐끗 한 번 잘 못 하면 찾게 되는 곳이 즉결 법정이다.

인생은 실전이다. 경미한 범죄(경범죄)를 저지르면, 경찰관이 현장에서 바로 범칙금을 부과하는 이른바 '딱지'를 손에 쥐게 된다. 법정에 설 수도 있다. 판사 앞에 서서 짧게는 2분 간의 심리 끝에 형벌의 무게를 정하는 '즉결심판'(卽決審判)이다.

법원의 날을 앞두고 지난달 24일 수원법원종합청사 즉결법정을 찾은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날 오전 10시 수원지법 즉결법정 재판장 최현정 판사 앞에 경범죄 사범이 차례로 섰다. 이날 출석해야 했던 피고인 45명 중 11명을 제외한 34명의 피고인들이 즉결법정에 나왔다. 즉결심판을 청구한 주체인 수원중부경찰서, 수원남부경찰서, 수원서부경찰서 피고인들 순으로 진행된 심리와 선고는 1시간여 만에 모두 끝났다.

전쟁 통에 군에서 사법절차 없이 신속하게 목숨을 거둬 가는 즉결처분과 단어가 비슷하고 그 자리에서 즉시 결정한다는 무시무시한 어감 탓에 즉결 법정을 찾은 사람들의 낯빛은 보통 좋지 않다. 하지만 경미한 범죄 사건을 신속하고 적정한 절차로 심판하는 심판 절차일 뿐 전과 기록에도 남지 않는다. 벌칙도 벌금 20만원이 재판장이 피고인에게 선고할 수 있는 최대치다.

16번째 피고인 A(60)씨는 방청석에서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 내내 '아이고, 아버지'를 찾았다. A씨는 지난 7월1일 수원시 영통구의 한 목욕탕 계단에서 화분 3개를 훔쳤다. 판사의 호명을 받고 피고인석에 선 그는 떨리는 두 손을 모으고 이번엔 "죄송합니다"를 반복했다. 최 판사는 "다른 사람 가게에 들어가서 아무 물건이라도 가지고 나오면 안 된다"며 벌금 5만원을 선고했다.

부산역에서 경부선 고속철도(KTX)를 타고 수원역까지 왔다가 무임승차 혐의로 즉결심판을 받은 B(36)씨는 '위반사항을 인정하느냐'는 재판장의 물음에 당당하게 "저는 범죄라고 인정하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 B씨는 본인이 중증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는데, 약을 복용하면 판단력이 흐려진다고 설명하면서 울산역에서 승무원이 운임을 내야 한다고 안내하면서도 내리라고 하지 않아 계속 타고 수원까지 왔다며 억울해했다. 최 판사는 막무가내로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B씨에게 벌금 10만원을 선고했다.

이날 유일하게 '청구기각'을 선고받은 C(19)씨는 피고인 석으로 향하는 발걸음부터 당당했고, 법정에서도 기세를 거둬들이지 않으면서 속칭 짝 다리를 짚었다. 팔 다리에 아직 색깔을 넣지 못한 스케치 형태의 용 문신을 그린 C씨는 보행로를 차량으로 통행했다는 혐의(도로교통법 위반)로 즉결법정에 섰다. C씨는 '주차장으로 들어가려면 보행로를 타고 넘을 수 밖에 없는데도 경찰관이 나를 표적으로 기다리다 적발을 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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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지법 즉결법정. 수원시 광교 하동 수원법원종합청사 정문에서 왼쪽 모퉁이에 즉결법정과 바로 통하는 출입구가 있다. /이시은기자 see@kyeogin.com

최 판사는 C씨의 변을 듣다가 "즉결심판 청구를 기각한다"고 말했다. 청구 기각은 즉결심판을 할 수 없거나 즉결심판 절차에 따라 심판하기에 적당하지 않을 때, 피고인 또는 즉결심판을 청구한 경찰서장이 정식 재판을 청구해 판단을 구하게 하는 절차다.

남편이 폭행을 한다거나 동생이 살해를 당했다고 112 허위 신고를 한 혐의로 즉결심판을 받게 된 D(35)씨와 E(29)씨는 각각 벌금 5만원, 10만원을 선고 받았다. D씨는 112 신고를 한 뒤에 30초쯤 지난 뒤 "맞지 않았다"고 신고 취소 전화를 했는데도 경찰관이 집에 와서 확인을 하고 허위 신고 혐의를 뒤집어 씌웠다고 주장했으나 범법 행위를 완전히 씻지는 못했다.

킥보드 가게에서 킥보드를 훔쳐 가 절도 혐의를 받는 10대는 벌금 10만원, 이륜차를 불법으로 튜닝한 20대와 훌라 도박을 벌인 일당 3명은 각각 벌금 5만원과 10만원을 선고 받았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즉결심판은 전국 법원에서 최근 10년(2010~2019년) 간 연 평균 6만559건 열렸다. 증·감 추세는 두드러지게 나타나진 않았다. 이중 수원지법 본원과 5개 지원(성남·여주·평택·안산·안양)에서 접수한 즉결심판 사건은 전체의 15.7%로 9천500건에 달한다.

보통 한 피고인 당 심리와 선고까지 1~2분 안에 끝난다. 즉결심판 재판장은 위반 사항을 인정하느냐, 왜 범죄를 저질렀느냐, 더 할 말이 있느냐고 묻고, 형량에 맞는 선고하면서 "친구랑 싸워서 다치게 하면 안 된다", "피고인은 과거에도 도박 전과가 있기 때문에 또 불법 도박을 하면 정식 재판을 받을 수도 있다"고 조언을 하거나 다시는 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말라고 '훈계'한다. 법정에서의 절차는 매우 짧지만, 제출된 사진·영상 증거를 모두 검토해 숙지한 뒤 마지막으로 피고인의 항변을 듣고 판단을 해야 하기 때문에 즉결심판을 주재하는 재판장의 업무 강도도 상당하다.

즉결법정에서 재판장과 피고인의 대화 내용은 동네 의원을 찾은 경미한 질환을 앓는 환자와 의사와 흡사하다. 다만 동네 의원이 의사가 작성한 처방전을 내원한 환자에게 계산과 동시에 쥐어주는 것과 달리 재판장이 20만원 이하의 벌금을 선고하면 피고인은 법정 안에 대기 중인 즉결심판 담당 경찰관에게 즉시 죗값으로 현금을 납부하거나 계좌 이체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즉결심판은 관할 경찰서장 또는 관할 해양경찰서장이 관할 법원에 청구한다. 범죄 증거가 명백하고 죄질이 경미한 사건을 경찰에서 신속하고 적정한 절차로 심판하기 위한 형사 소송 절차가 즉결심판이다. 벌금은 20만원 이하로 가볍다. 성인의 경우 벌금 대신 5만원을 일일로 환산해 구류(교도소 또는 경찰서 유치장에 구치)하는 환형을 하지만, 미성년자는 환형 없이 유죄로 판단하면 벌금만 부과한다.

경기남부경찰청 소속 일선 경찰서 생활질서계의 즉결심판 업무 담당 경찰관은 "즉결심판은 경찰이 검찰을 거치지 않고 곧장 판사에게 판단을 구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검찰 기소독점주의의 예외라고 한다"며 "죄가 명백하고 다툼이 없는 단순한 생계형, 우발적 범죄 등 가벼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전과 기록이 남지 않는 선에서 처벌하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손성배·이시은기자 so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