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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호 인천본사 디지털취재팀장
우리나라에서 주량(酒量)이 어느 정도냐고 물으면 소주를 기준으로 답한다. 소주 한 병, 한 병 반, 두 병이라고 답하는 식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야 소주 한 병에 맥주 두 병 정도라고 얘기한다. 소주로 주량을 가늠하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마시는 술이기 때문이다. 물론 1987년 소주(25도)와 2021년 소주(16.9도)로 따지면 얘기는 달라진다. 30여 년 전 소주 한 병의 주량은 지금으로 소주 두 병 정도의 질(質)적인 차이가 나지 않을까. 어쨌든 주량은 일반적으로 그 시대에 주로 소비되는 술로 세어 따지는 게 맞다. "소싯적, 왕년,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주량은 인정하지 말자. 


1·2·3차… 자정 훌쩍 넘긴 기억 '가물가물'
방역탓에 농도 짙은 술로 속도전 다음날 녹초


회사에서 퇴근하는 오후 6시30분에서 7시쯤 1차를 시작해 2차, 3차 자리를 거치면 자정을 훌쩍 넘기곤 했던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급기야 코로나19 방역 4단계에 접어들면서 식당 영업시간이 오후 9시로 제한됐다. 현재로서는 직장인이 술자리를 가질 수 있는 시간은 퇴근 후 3시간도 채 안 된다. 방역강화로 식당 영업시간이 제한되면서 음주 방식도 달라졌다. 처음에는 어쩔 줄 모르더니 2·3단계 방역이 장기화하면서 슬슬 적응하기 시작하다 4단계가 한 달쯤 지나니 나름 술기운을 높이는 비법을 터득해 나가고 있다. 술집 선정 기준부터 달라졌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는 퇴근 후 좀 멀더라도 즐겨 찾는 식당이나 안주가 맛있는 술집을 선호했다면, 지금은 무조건 회사에서 가까운 곳을 선택한다. 맛이나 분위기를 따지는 것은 사치다. 한 잔이라도 더 마시기 위해서는 한 걸음, 일분일초라도 아껴야 한다.

식사와 곁들여 시작되는 1차 자리의 술의 알코올 농도도 세졌다. 일단 첫 잔은 소맥(소주와 맥주를 섞은)부터 만들어 놓고 시작한다. 짧은 시간 충분한 취기에 이르려면 무리수를 두는 수밖에 없다. 술 마시는 속도도 코로나 발생 이전과 사뭇 다르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듯이 쉴새 없이 술잔을 부딪친다. 심지어 대화하는 시간도 줄었다. 급하게 농도를 높여서 마시는 술이 천천히 가볍게 마시는 것보다 몸에 더 해로운 것은 당연하다. 하루의 스트레스를 술로 푸는 직장인들은 방역수칙을 지키면서, 술도 마셔야 하는 이중·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요즘 술과 관련한 문고본 책들이 관심을 끈다.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등 세 출판사가 함께 펴내는 아무튼 시리즈의 '아무튼 술', '아무튼 술집'을 비롯해 세미콜론 출판사에서 내놓은 '해장음식-나라 잃은 백성처럼 마신 다음 날에는' 책들은 유쾌한 술자리에 관한 경험담을 담고 있다. 한 책의 소개 글처럼 '평소 성실하고 철저한 과음으로 최적의 숙취 상태를 유지'하면서 각종 술과 안주, 술집에 관한 이야기와 더불어 해장 음식까지 맛깔나게 소개한다.

세 책 모두 다양한 영역에서 개성 넘치는 글을 써온 이들의 글이어서 더 신선하고 흥미롭다. 이들에게 술의 양은 중요하지 않다. 주량은 병 단위로 얘기하지 않는다. 전날 술자리에 일어난 일이나 대화를 기억하는가, 술자리가 끝나고 가게를 나오는 순간 다음 날 아침 해가 떴는가, 어떤 안주로 술자리가 이어졌는가, 누구와 마셨는가가 더 중요하다. 술 마실 시간이 없는 날이면 '팩 소주'에 빨대를 꽂아 먹으면서 퇴근할 정도로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술은 즐기기보다 진솔한 대화의 자리가 돼야
'열여덟'이 아닌 '잘해보자' 서로 다독여야


요즘 동료나 지인들 사이에서 "예전에는 어떻게 자정 넘게까지 술을 마셨는지 모르겠다. 이젠 1차만 해도 다음 날 힘들다. 10시가 새벽 1시처럼 느껴진다"는 말을 자주 한다. 당연하다. 그렇게 짧은 순간에 농도 짙은 술을 속도전을 치르듯이 부어댔으니. 술자리에 여럿이라도 있으면 눈치껏 한두 잔 안 마시고 넘길 수 있지만, 방역 탓에 단둘이 앉은 술자리에서 '짠'하고 술잔을 부딪치고 안 마실 수도 없는 일이다. 술은 술 자체를 즐기기보다 지인들과 함께 진솔한 얘기를 나누는 자리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힘들어하는 후배를 격려하고, 좋은 성과를 축하해주고, '당신을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자리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일을 기대하고, 지친 하루를 위로하는 자리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열여덟'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그래 잘 해보자'고 서로를 다독이는 자리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술은 그렇게 마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진호 인천본사 디지털취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