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산업노동자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근대 건축물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 학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인천 옹진군이 제2장학관을 지으며 철거키로 한 인천 중구 전동(錢洞)의 한 건축물이 일제강점기에 운영되던 '후카미 양조장'의 기숙사 등으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용역보고서가 최근 공개됐다. 철거 예정 건축물에 역사적 의미가 부여된 만큼, 철거를 둘러싸고 찬반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학계에서는 무엇보다 이 건축물의 역사적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1896년 문을 연 후카미 양조장은 당시 인천 전체 술 생산량의 30%를 책임지던 대형 양조장으로 중국에 제품을 수출하기도 했다고 한다. 후카미 양조장의 기숙사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이 건축물의 2층에는 양조장 노동자 8~15명이 생활할 수 있는 규모의 방 2개와 이들이 침구류를 보관했을 것으로 보이는 시설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일제 강점기 인천의 산업구조 또는 소규모 산업 노동자들의 생활상을 연구하는 데 단초를 제공하는 건물인 셈이다. 학계는 특히 인천 부평구의 '미쓰비시 줄 사택'이나 '영단 주택'보다도 앞선 시기의 기숙사였다는 점을 들어 역사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사실 인천에서 역사적 의미가 깃들어있는 근대건축물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인천은 개항기 이후 외국과의 교역 중심지였던 만큼, 다양한 근대건축물과 근대산업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건축물은 자갈밭에서 조약돌 골라내듯 도시화에 밀려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인천 최초의 소아과병원으로 알려진 신포동 자선소아과를 비롯해 조일 양조장과 동방극장, 비누공장이었던 애경사 등 빛바랜 사진 속에나 남아 있는 근대 건축물은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물론 장학관을 이용하는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건물을 철거키로 한 옹진군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오랜 기간 방치된 건물이 흉물로 여겨지는 것도 당연하다. 이런 점에서 '후카미 양조장 건물을 리모델링해 제2옹진장학관 부속 건물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한 근대건축물 전문가의 제안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철거냐 보존이냐'라는 식의 이분법적 접근보다, 발상의 전환으로 대안을 찾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